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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1 09:16 수정 : 2019.01.21 19:05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쿠르드족은 ‘지구의 미아’로 불린다. 3500만명에 이르는 인구가 나라도 없이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10여년 전 터키 앙카라 근교의 쿠르드족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쿠르드어를 쓰고 쿠르드어 방송을 보면서 쿠르드 음식과 관습을 지켜가며 살고 있었다. 친척들도 지척에 살면서 자신들의 명절과 대소사를 함께 챙긴다고 했다. 이런 쿠르드의 역사는 성경에서도 기록을 찾을 수 있을 만큼 깊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한번도 자신의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도 독립투쟁 중이다. 터키에서, 이라크에서, 시리아에서.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겠다고 한 이후, 쿠르드의 운명이 다시 관심이다. 미군은 그동안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 퇴치에 진력해왔고, 거기에 쿠르드민병대가 적극 협력했다. 시리아 북부에 독립국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으로 미군을 도운 것이다. 아이에스가 세력을 잃자 미군은 빠지겠다는 것인데, 시리아에 남은 쿠르드민병대는 이제 터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시리아에 쿠르드 독립국이 생기면 터키 내 쿠르드족이 자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쿠르드민병대의 안전을 보장할 때까지 미군 철수를 미루겠다는 얘기가 미국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미국이 얼마나 쿠르드민병대를 지켜줄지는 미지수다. 목숨 걸고 미국을 도왔지만 시리아 쿠르드족에게는 백척간두의 위기만 남게 되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허위의식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 민족주의는 인류의 실존적 열망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일차적 활동 무대로서 민족국가에 대한 희망도 대부분의 민족들이 가지고 있다. 쿠르드족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쿠르드 독립국가 ‘쿠르디스탄’ 건설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두가지가 쿠르디스탄을 저지해왔다. 하나는 강대국과 주변국의 방해다. 오스만튀르크 제국 내 쿠르드족 거주지를 여러 나라로 쪼갠 것이 1923년 로잔 조약이다. 유전을 가진 새로운 중동국가의 출현을 우려한 영국과 프랑스, 쿠르드 국가가 생기면 영토를 내놓아야 했던 터키가 합작해 만든 조약이다. 1980년대에도 무장 독립투쟁이 있었지만 터키의 진압으로 실패했다. 지금도 주변국은 분리독립운동을 방해하고 탄압한다.

다른 하나는 쿠르드의 분열이다. 지리적으론 인접해 있으면서도 터키계, 이라크계, 이란계, 시리아계가 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터키계 쿠르드가 터키 정부와 맞서고 있는데, 이라크계 쿠르드는 자신들의 석유를 수입하는 터키 정부와 손잡았다. 그러니 터키가 시리아계 쿠르드를 공격해도 이라크계 쿠르드는 시리아계 쿠르드를 도울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라크계 쿠르드 내부도 쿠르드민주당, 쿠르드애국동맹으로 양분되어 있다. 분열의 중첩이다. 그러니 탄압하는 주변국에 맞설 수 없다. 분열의 틈새에서 강대국은 마음껏 쿠르드를 이용한다. 그러고는 버린다.

쿠르드의 비운은 우리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 겹쳐 보인다. 소련과 미국의 진주로 시작된 분단,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동상이몽, 분단의 상황을 활용해 국익을 실현하려는 세력들….

슬픈 쿠르드의 노정을 따라가지 않는 길은 분명해 보인다. 남과 북이 아옹다옹할 때 주변 세력은 한쪽을 이용해 다른 쪽을 견제하고 자기 것은 온전하게 챙긴다. 반대로 남북이 스스로 만나 협의하고 하나가 되어 가면 주변은 비집고 들어올 틈새를 못 찾고 배회한다. 그게 오래가면 남북 스스로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결과물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2019년은 부디 남북이 더 많은 것을 자체 생산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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