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야만적인 차별을 줄이는 최소한의 일이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의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지시에 따른 영역별 차별금지법 제정의 일방적인 논의 중단에 있다.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치’,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수단 확보’를 핵심으로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그 제정에서도 장애인계와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들의 선택이며 투쟁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편견을 부르고 장애인을 주변화하며 대상화해 왔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그런데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일방적인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을 앞세워 법 제정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잠재된 차별의식과 무서운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장애인을 권력과 자본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시혜적 치장물로 취급하고, 장애인들을 구걸하게 만들고 주체성을 종속시켰던 사회적 관행이며 잠재된 음모이다. 그들은 효율과 기능의 문제를 언급하고 끊임없이 장애인에게 질적인 서비스를 운운하며 그럴듯한 논리적 미끼를 던진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 유혹해도, 아니 설령 그것이 실제 좋은 것일지라도, 장애민중의 아래로부터 투쟁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 둘째, 장애인의 사회정치적인 지위의 문제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기제의 핵심은 그 철저한 종속성에 있다. 자신의 문제임에도 정책 참여와 결정에 장애인은 배제되고 소외된다. 그로 인해 장애인은 절대적으로 열악한 사회정치적 위치에 처해 있다. 장애인의 문제는 진지한 인권과 사회적 의제로 채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 차별 문제를 다루어 왔던 것은 단순한 서비스 전달의 수준이었다. 장애인은 그들의 ‘인권’이라는 요리에 적당한 양념에 불과할 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 참여와 결정은 비장애인 중심이었으며, 장애인은 어떠한 할당도 인정되지 않고 배제되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할당과 배제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의 사회정치적인 지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적어도 장애인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 사회적인 힘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무엇보다 장애의 지위를 존중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진지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장애인의 차별적 구조를 해소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선택 그리고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시정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야만적인 차별을 줄이는 최소한의 일이다. 박경석/전국 장애인차별 철폐연대 공동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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