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선택진료제’가 생긴 이유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도입한다는 명분과 달리, 대형병원들에 환자로부터 직접 추가적인 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2005년은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중요한 해였다. 건강보험 급여 확대가 연간 1조5천억원 규모에서 추진된 것이다. 아직 그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국민들이 납부한 보험료로 건강보험의 적자를 해결하고도 흑자를 남겨 이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05년이 지나기도 전에 건강보험 보장 수준이 오히려 후퇴할 징조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택진료비’다. 최근 수도권의 여러 대학병원들은 병동을 신축하여 병상을 늘렸는데 이들 병원은 확장공사에 들어간 비용을 빠른 시간 안에 진료비 수입으로 거둬들이기 위하여 환자들에게 ‘선택진료비’를 과거에 비해 높게 부과하고 있다. 병원 쪽에서는 선택진료비에 대한 정부나 건강보험공단의 관리가 전혀 없으며, 추가적인 비용이 없이도 수입을 확대할 수 있으니 ‘선택진료비’만한 손쉬운 수입확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확장공사를 한 어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한 환자의 영수증을 보니 총진료비 320만원 중에서 선택진료비가 80만원 가량으로 25%나 차지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영수증 양식이 바뀌어 선택진료비가 어떤 항목에서 부과되었는지 영수증만 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환자는 민원을 제기할 수도 없는 모호한 상황이며 비용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선택진료제’가 폐지되는 것이 올바르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의료제도가 잘 발달한 여러 나라를 살펴보더라도 특정 의사를 선택했다고 해서 추가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우리나라의 ‘선택진료비’ 같은 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선택진료제’가 생긴 이유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도입한다는 명분과는 달리, 대형 병원들에 환자로부터 직접 추가적인 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부는 건강보험 수가를 낮게 유지하기 위하여 그 비용부담을 환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따라서 선택진료제는 ‘개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폐지’를 통해 그 원죄로부터 벗어나는 정석의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는 선택진료제의 폐지는커녕 오히려 선택진료비용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방향에서 정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일반의사가 없어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 “검사·진단 촬영에서 내가 선택한 의사가 아니었다” 등 선택진료와 관련하여 많은 환자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내용에 대하여 “환자들의 민원 소지를 없애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가 검토하는 방안은 그에 대한 규정을 바꾸어 ‘문제가 아닌’ 정당한 일로 만들어 민원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데 이와 관련된 규정을 바꾸어 ‘문제가 아닌 것’으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병원은 환자에게 선택진료비를 부담시키는 것이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며, 따라서 환자의 비용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건강보험 보장 수준은 오히려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현재 보건복지부는 전국적으로 한 해에 선택진료비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선택진료제의 관리방법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선택진료 제도에 대한 병원 감사를 해 달라는 요청에도 응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용부담은 환자가 하고 있고, 병원은 이를 통해 손쉽게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선택진료제의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탄생의 배경조차 정석이 아닌 병원수입 보전을 위한 편법의 수단이었던 선택진료 제도는 폐지해야 마땅하다. 관련 규칙을 바꾸어 민원의 소지를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개정’을 한다고 근본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선택진료제 폐지’만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인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 수준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선택진료제는 폐지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제시했던 ‘건강보험 보장 수준 80%’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선택진료제’는 폐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 시민단체는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병원의 수입보전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제 병원과 보건복지부가 이에 답할 차례다. 김창보/건강세상 네트워크 사무국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