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경남도립거창대학 교수 ‘잡상인 및 대학교수 출입금지.’ 고교 교무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게시 문구라고 한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이런 자조적인 문구가 횡행하는 것은 내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때에 학교 홍보활동을 하러 동서남북 발로 뛰던 경험에 비춰보건대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다. 대학 소개 책자를 들고 교무실 문을 뻘쭘히 열고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히고 들어서면, 만나야 할 교사는 책상 위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게임에 몰두하면서 아예 대학교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가 하면, 아래위로 한번 쓱 훑어보고는 ‘저기 저 구석에 던져두고 가세요’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21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른바 ‘지잡대’(지방에 소재한 잡다한 대학) 가운데 특히 2년제 전문대학들은 대학의 존망과 학과의 존폐를 걸고 입시 활동에 전력투구한다. 한 고교에서 대학 홍보 활동 허락을 얻어내려면 대개 한 고교를 기본 3번은 방문해야 한다. 첫번째 방문은 3~4월 학기 초다. 찾아간 고교의 분위기가 어떤지, 3학년 부장과 담임 진용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정탐하는 단계다. 담임 중에 혹시 학교나 고향의 선후배나, 선후배의 친구의 친구라도 연이 닿는다면 대박이다. 대학 홍보물이 별도로 준비되지 않은 대학은 개인 돈을 써서 최소 음료수 상자 하나는 들고 학교마다 찾아간다. 입시 홍보비가 적은 국공립대학들은 다른 항목에 책정된 국비를 입시 홍보비로 전용하기 위해 총장을 위시하여 말단 담당자까지 머리를 싸맨다. 두번째 방문은 여름방학쯤이다. 이때는 홍보회 가능 여부를 탐색하는 단계다. 내가 다녔던 지잡대 중에서도 전문대학은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기껏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뒤인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나 큰 인심 쓰듯 10분여 허락해준다. 홍보 물품을 양손에 들고 낑낑대며 강당에 가보면 홍보회에 참석한 고교 학생이 홍보하러 온 각 학과 교수보다 적을 때도 있다. 3단계는 대학 홍보 설명회다. 운이 좋아, 또는 모종의 뒷거래가 있어서 고교가 협조를 해주면 수십명씩 모인다. 교수들은 차례로 각기 제 학과 홍보에 침을 튀긴다. 전혀 원서를 못 받는 학과가 있는가 하면, 인기가 있어 무더기로 원서를 받는 학과가 있어 일희일비한다. 2019학년도 수시 모집은 끝났다. 물론 목표량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래서 신줏단지 모시듯 원서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원서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학생들이 거부감 가지지 않을 정도의 주기로 몇차례 전화 설득을 한다. 아예 다른 학교 가기로 맘먹고 수신 거부를 걸어버리는 아이들도 많다. 이메일 주소로 별도 작성한 학과 홍보지를 보낸다. 부모님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면 부모님께도 온갖 감언이설로 호소한다. 예비등록기간이 오면 더 바빠진다. 죽을힘을 다했어도 대부분 학과가 미달로 끝난다. 정시라고 희망을 걸기도 어렵다. 애처로운 교수 낯빛을 안타까워하는 담임 몇분은 반 아이를 불러 모 대학으로 가라고, 학비 싸고 취업률 높다고 을러보지만 콧방귀만 뀐다. 수시모집에 이미 합격했고 나이트클럽 하나 없는 그 먼 시골까지 왜 가느냐는 항변이다. 과거 대학 설립인가를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바꾼 이후 전국에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탓이다. 교육부에서는 대학 평가를 통해 자연 퇴출을 해마다 유도하고는 있으나 지지부진이다. 30살 중반까지 죽을힘을 다해 외국까지 가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바늘구멍 같은 절차를 거쳐 대학교수 되었다고 온 동네 입구에 축하 플래카드까지 걸었는데, 교수님 호칭 듣자마자 종 치고 막 내릴 대학들의 수많은 젊은 교수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왜냐면 |
[왜냐면] 지잡대 교수의 비애 / 정윤범 |
전 경남도립거창대학 교수 ‘잡상인 및 대학교수 출입금지.’ 고교 교무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게시 문구라고 한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이런 자조적인 문구가 횡행하는 것은 내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때에 학교 홍보활동을 하러 동서남북 발로 뛰던 경험에 비춰보건대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다. 대학 소개 책자를 들고 교무실 문을 뻘쭘히 열고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히고 들어서면, 만나야 할 교사는 책상 위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게임에 몰두하면서 아예 대학교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가 하면, 아래위로 한번 쓱 훑어보고는 ‘저기 저 구석에 던져두고 가세요’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21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선다고 한다. 이른바 ‘지잡대’(지방에 소재한 잡다한 대학) 가운데 특히 2년제 전문대학들은 대학의 존망과 학과의 존폐를 걸고 입시 활동에 전력투구한다. 한 고교에서 대학 홍보 활동 허락을 얻어내려면 대개 한 고교를 기본 3번은 방문해야 한다. 첫번째 방문은 3~4월 학기 초다. 찾아간 고교의 분위기가 어떤지, 3학년 부장과 담임 진용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정탐하는 단계다. 담임 중에 혹시 학교나 고향의 선후배나, 선후배의 친구의 친구라도 연이 닿는다면 대박이다. 대학 홍보물이 별도로 준비되지 않은 대학은 개인 돈을 써서 최소 음료수 상자 하나는 들고 학교마다 찾아간다. 입시 홍보비가 적은 국공립대학들은 다른 항목에 책정된 국비를 입시 홍보비로 전용하기 위해 총장을 위시하여 말단 담당자까지 머리를 싸맨다. 두번째 방문은 여름방학쯤이다. 이때는 홍보회 가능 여부를 탐색하는 단계다. 내가 다녔던 지잡대 중에서도 전문대학은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기껏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뒤인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나 큰 인심 쓰듯 10분여 허락해준다. 홍보 물품을 양손에 들고 낑낑대며 강당에 가보면 홍보회에 참석한 고교 학생이 홍보하러 온 각 학과 교수보다 적을 때도 있다. 3단계는 대학 홍보 설명회다. 운이 좋아, 또는 모종의 뒷거래가 있어서 고교가 협조를 해주면 수십명씩 모인다. 교수들은 차례로 각기 제 학과 홍보에 침을 튀긴다. 전혀 원서를 못 받는 학과가 있는가 하면, 인기가 있어 무더기로 원서를 받는 학과가 있어 일희일비한다. 2019학년도 수시 모집은 끝났다. 물론 목표량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래서 신줏단지 모시듯 원서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원서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학생들이 거부감 가지지 않을 정도의 주기로 몇차례 전화 설득을 한다. 아예 다른 학교 가기로 맘먹고 수신 거부를 걸어버리는 아이들도 많다. 이메일 주소로 별도 작성한 학과 홍보지를 보낸다. 부모님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면 부모님께도 온갖 감언이설로 호소한다. 예비등록기간이 오면 더 바빠진다. 죽을힘을 다했어도 대부분 학과가 미달로 끝난다. 정시라고 희망을 걸기도 어렵다. 애처로운 교수 낯빛을 안타까워하는 담임 몇분은 반 아이를 불러 모 대학으로 가라고, 학비 싸고 취업률 높다고 을러보지만 콧방귀만 뀐다. 수시모집에 이미 합격했고 나이트클럽 하나 없는 그 먼 시골까지 왜 가느냐는 항변이다. 과거 대학 설립인가를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바꾼 이후 전국에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탓이다. 교육부에서는 대학 평가를 통해 자연 퇴출을 해마다 유도하고는 있으나 지지부진이다. 30살 중반까지 죽을힘을 다해 외국까지 가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바늘구멍 같은 절차를 거쳐 대학교수 되었다고 온 동네 입구에 축하 플래카드까지 걸었는데, 교수님 호칭 듣자마자 종 치고 막 내릴 대학들의 수많은 젊은 교수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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