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4 18:27
수정 : 2019.01.21 14:41
김순영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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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22일 시간 강사 채용을 줄이려는 고려대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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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에 선 자다. 2008년 가을부터 시작된 시간강사의 삶이 지난해 12월 종료되었다. 이른바 독립연구자의 삶이 시작된 셈인데,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동안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을 포함해 세군데 대학에서 강의했지만, ‘시간강사 처우개선’이라는 말 많고 탈 많았던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게 되었다. 고학력·저임금의 강의 노동자 생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점이다.
한양대 이도흠 교수의
‘시간강사 대량해고를 즉각 중단하라’는 <한겨레> 기고(2018년 11월20일치)를 읽고 복잡한 감정을 다독여오다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대한민국의 시간강사 대부분이 그렇듯 최소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강사료는 고단한 현실 세계의 진입을 의미한다. 그나마 나는 위태위태하게 남편 덕분에 생계 자체의 위협을 모면했지만, 생계를 오롯이 홀로 책임지는 강사들은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박사학위를 가진 고학력 지식인이라는 미명 아래 삶을 위태롭게 꾸려가는 시간강사는 가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여 가끔 열패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가족의 도움으로 생계의 위협을 모면해도 연구자의 삶을 지속하는 것은 더없이 고되다. 연구자로서의 삶의 기반을 위해 2년 계약직 강의교수 자리에 지원해도 인맥이 닿지 않으면 교원이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정책과 시스템 운영을 말하지만 허울뿐인 수사 장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국내 박사는 연구자로서의 진입 장벽마저 높다. 박사학위를 받고 찾아간 학회에서의 첫 느낌은 홀로 떠 있는 섬이었다. 대체로 학회 구성원들은 전임교수나 외국 학위자로서 그들 나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소심해진 나는 박사학위를 준 학교 대학원과 평생교육원에서 성실하게 강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 없이 8년을 강의에 전념했다. 한 학기에 많게는 주당 18시간, 적게는 4시간을 강의했다. 그러던 중 지도교수이셨던 선생님께 교내에서 발행하는 학술저널 기고 절차를 문의했지만, 전임교원만 기고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개떡만도 못한 박사학위였다. 학교가 내게 최우수논문상까지 줬지만, 전임교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술저널 기고 자격도 주지 않는다니! 존재의 부정이다.
2016년 12월에 유예된 강사법이 진통 끝에 실행을 앞두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7만명이 넘는 시간강사 중 한 사람으로서 불안감만 조여온다. 그해 겨울, 다음 학기 과목이 배정되고 수강신청까지 진행됐지만, 돌연 취소됐다. 교학처는 강의 의뢰 할 때처럼 공문 형태의 알림도 없었다. 매 학기 15주 계약서를 작성하는 초단기 비정규직 지식노동자의 신분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시간강사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이후 다른 학교에서 강사의 삶을 이어갔지만, 다시 여러 잡음으로 유예된 강사법 실행은 미세먼지의 텁텁함과 공포처럼 다시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방학이면 잠재적 실업상태라고 지인들에게 자조 섞인 말로 웃으며 뱉어내곤 했지만, 이제 잠재적 실업자가 아니라 나이 오십에 실제적 실업자가 되었다. 개떡만도 못한 국내 박사학위를 소지한 실업자다. 학술논문 기고나 강연 요청을 받으면 ○○대학교 강사 또는 초빙교수라고 소속을 밝혔지만, 그 알량한 표시조차 할 수 없다. 애써 슬픔을 감추어야 할 독립연구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자유롭지만, 스스로 절망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생존하기’를 터득해야 하는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강사들의 대규모 해직을 앞두고 대학과 지식 생태계 위기라며 대책 강구를 외치는 소수의 대학교수들 목소리라도 들려오니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들은 그 위대한 대의명분보다 생존 자체에 위협당하는 삶을 연명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생존본능은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최우선이다. 그리고 사족 하나를 덧붙인다. 부디 대학 관계자들은 특수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 운영하며 학문후속세대니 그럴싸한 명분 내세워 호객행위 하듯 학생 모집하고서 그들을 학교 재정 확충과 규모 확장을 위한 희생물로 삼지 마시라. 이제 그만 ‘박사 실업자 만들기’를 멈추시라. 그 끝이 삶의 최전선으로 내몰리는 경계에 선 자들의 서사로 넘쳐나지 않도록.
영화 〈스윙 키즈〉처럼 힘을 가진 자의 말 한마디에 의한 죽음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 삼았지만, 적대적인 이념 갈등의 속살 깊숙이 삶과 자유와 희망을 꿈꾸는 경계에 선 자들의 슬픈 서사였다. 나도 생존본능의 서사를 새롭게 써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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