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31 17:12
수정 : 2018.12.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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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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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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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가명) 공기업 직원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를 문제로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 대립각이 세워지고 한편에서는 이를 절충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필자가 속한 조직의 노동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추진된 주 52시간 초과 근로 금지 제도는 내 삶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을까? 또 앞으로의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이 조직의 경영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을 실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삶은 라이프 밸런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잘못도 있겠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참고로 맡은 일은 인사·노무 쪽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업관리 분야이다.
사회에서 보기에 내가 속한 조직은 누구나 선망하는 공기업이고 입사 5년차에 주임으로서의 나의 위치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올해 7월부터 나의 삶은 일로만 이어져 있다. 근로시간 축소에 따라 담당 업무 외에 전혀 다른 일을 추가로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조직 내에서 노동조합에 속한 직군은 주 52시간을 보장해주었는데 그 이상의 초과되는 업무를 비조합원으로서 받은 것이다.
이때부터 평일에는 본래 나의 업무를, 휴일에는 다른 사람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더욱이 조직의 인건비 예산이 부족하여 주당 40시간을 초과해 일하여도 초과근무수당은 없다. 이런 생활을 한 지 12월로 6개월이 됐다. 그렇다고 본업도 줄여주는 것 없이 그대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란 너무도 힘들다. 그럼 조합원이 되어 권리를 보장받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조직 내의 경직된 분위기상 관리직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근로기준법 개정을 거쳐 다가온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 사회 전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겠지만 법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곳의 노동자에게는 달갑지만은 않은 정책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한 근로는 열정페이나 무료봉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문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적시에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일 수 있겠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법마저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더 늘리고 실질임금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가 현장에서 원래 취지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많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무리해서 확대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면밀히 파악하고 사용자가 지위를 활용하여 법을 무시할 소지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근로기준법 1조에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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