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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5 17:52 수정 : 2018.12.26 11:24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

얼마 전 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던 숙명여고 교무부장이 구속기소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온 국민이 경악하였고 학부모들은 믿었던 교사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정직하게 공부한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다.

왜 시험지를 훔치면서까지 내신 성적을 잘 받으려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점이 녹아 있다. 현재 대입제도는 크게 내신 중심의 수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로 구분할 수 있고 각 모집 비율은 수시가 76.2%, 정시가 23.8%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시 전형에서 내신 성적은 대학과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즉 내신 성적을 잘 받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시험지를 훔쳐서라도 잘 받으려고 한다. 내신 비리의 근본 원인은 이러한 과도하게 높은 수시 비율에 있다.

내신 비리 근절을 위해 관리·감독을 엄격하게 하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능은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 출제 교수들이 격리되어 합숙을 하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다. 반면에 내신 시험은 문제를 출제한 교사들이 시험이 끝나기 전에도 자유롭게 외부활동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교사들의 양심을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수능시험 출제자의 양심도 믿어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현실화된다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설치나 상피제 도입, 시험지 관리·감독 강화 등 내신 시험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신 시험은 수능처럼 완벽한 관리·감독이 불가능하므로 수시 비율을 대폭 낮추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내신 비리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내신 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내신 비중을 대폭 낮추어 내신 성적을 잘 받지 못해도 수능을 통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정시가 대폭 확대되는 것이다.

수시의 또 다른 문제점은 살인적인 내신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신 시험은 바로 옆 친구와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비교육적이다. 바로 옆 친구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내신 등급이 올라가고 목표하는 대학에 갈 수 있으므로 옆 친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 상대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수능은 전국단위 시험이라 전국의 불특정 학생들과 경쟁하므로 옆 친구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수시에서 협업을 강조하지만 정작 협업을 실천할 수 있는 제도가 수능이다.

수시는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통계를 보면 고등학교 1학년 때 내신 성적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상승한 경우가 3%밖에 되지 않는다. 즉 고1 때 내신을 잘 받지 못하면 바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고 열심히 하더라도 역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점옥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달 12일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의 시험지 유출 사건의 수사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불공정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폐지돼야 한다. 학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모의 능력이 학생의 능력으로 둔갑한다는 점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학생부에 쓸 내용을 직접 작성해 오라 하고 학생은 컨설팅업체를 이용하여 학생부 내용을 만들어 교사에게 전달한다. 교사는 본인이 직접 학생을 관찰하고 기록한 듯 그 내용을 학생부에 올린다. 가짜 학생부인 것이다. 대학은 컨설팅업체에서 작성한 가짜 학생부로 학생을 평가하여 당락을 결정한다. 이것은 학생의 능력이 아니라 컨설팅업체 또는 부모의 능력을 평가하여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다. 학종은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대입 당락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반칙이고 편법인 것이다.

‘수능도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수능은 학생 본인이 시험장에 들어가서 본인이 받은 점수로 평가받는다. 사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학생 본인이 공부하지 않거나 능력이 떨어지면 수능을 잘 볼 수 없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

또 학종은 당락의 기준이 없다. 즉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기준이 없으니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하고 불안한 마음에 컨설팅업체를 찾게 된다.

사교육비에서도 수시는 돈이 많이 드는 전형이다. 수시가 확대되면서 사교육비가 증가했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 수시는 내신을 위해서 학교 근처 학원에 갈 수밖에 없고 학생부 관리를 위해 고액의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반면에 수능은 전국단위 시험이므로 저렴한 인터넷 강의나 <교육방송>(EBS) 강의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능 위주 전형일 때 사교육비가 가장 적게 든다.

입시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4차산업 대비,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대입제도 개선에는 공감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공정성이 무너지면 그 입시제도는 사상누각인 것이다. 공정성이 담보된 틀 안에서 여러 가지 교육적 가치가 있는 형태로 개선되어야 한다. 공정한 입시제도하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정직한 노력의 대가를 얻고 싶다는 우리 학생들의 무언의 절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입시는 공정해야 하고 수능은 확대되어야 한다.

[이슈논쟁] ‘대입제도 개편방향’

<편집자주> 올 한해도 대입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으로 인해 대입 수시 전형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확대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이른바 ‘불수능’으로 출제되면서 앞으로 수능이 사교육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랐다.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수시 전형도 정시 전형도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온전히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신만 커진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달 11일 교육부의 2019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여론을 의식하며 “교육에 공정성과 투명성,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더 큰 개혁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대입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해, 각기 정시 확대와 수시 보완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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