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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4 18:20 수정 : 2018.12.25 13:31

류현숙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지난달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케이티(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서울 용산·서대문·마포·은평·중구 일대에 통신장애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동전화와 인터넷, 카드결제 단말기 등을 이용할 수 없어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케이티는 이번 화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특히 영업 손실이 큰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보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러한 기술 재난으로 불편함이나 경제적 피해는 물론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과 노인이다. 기술 재난으로 인해 연락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들은 보호자나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통신장애 상황 인지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며, 특히 장애나 질병으로 인한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119 등에 연락을 취하지 못해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장애 인구수는 총 267만명이며, 후천적 원인(질환·사고)에 의한 장애인은 이 중 88.1%로 집계됐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화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장애 노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누구나 늙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상당수 국민들은 가까운 미래에 노화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민의 안전을 헌법적 권리로 강조하면서 일차적으로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안전취약계층의 안전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장애인 정책은 여전히 ‘배려’, ‘포용’의 명칭을 붙여 시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재난과 안전사고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노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지 않는 한 모두가 노화로 인한 장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편견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 사회 안전 수준을 보여주는 ‘시금석’, 또는 안전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지표’ 구실을 한다. 왜냐하면 장애인의 안전 수준을 통해 우리는 화재 안전, 보행 안전, 시설 안전, 범죄 안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의 경우,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뿐만 아니라 노인, 임산부, 어린이, 유모차를 끄는 사람의 안전한 이동권과 편리성도 보장한다. 또한 불이 났을 때 장애인이 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경사로와 시청각 자극을 활용한 화재 경보 등이 잘 갖춰져 있다면, 그 시설은 비장애인에게도 더욱 안전한 대피로가 확보된 곳일 것이다.

이런 인식에 따라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서비스나 공공시설 이용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나 ‘장벽 없는 생활환경’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장애인 안전을 위한 정부의 예산이나 사업은 ‘불편한 사람’ ‘불쌍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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