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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11 18:12 수정 : 2018.12.12 14:21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한 단위기간 내에 평균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넘는 추가 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2주 단위로 적용할 경우 일이 많은 첫 주에는 60시간 일하고 두번째 주에는 44시간 일해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식이다. 현재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은 최대 3개월이지만, 경영계는 집중근무가 필요한 업종을 중심으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여야는 이 문제를 연내 처리하기로 했으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 등으로 논의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미뤄져 있는 상태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

지난 11월5일 정부와 국회는 근로시간 단축 개정법 시행에 따른 산업현장의 위기에 공감하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합의를 하였다. 이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고, 노동계의 반발 또한 거세다.

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기업이 다른 경쟁자에 앞서 일감을 확보하고, 확보한 일감을 적기에 최상의 품질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장이 병행돼야 한다. 더욱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이 선도적으로 시장수요에 대응하고 고품질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싸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유연한 근로시간 활용으로 특정 기간 근무집중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물량이 많을 때 많이 일하고 적을 때는 적게 일하는 제도다. 물론 전체 평균은 최대 1주 52시간에 맞춰야 하므로 일하는 시간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절히 활용하면 사용자는 생산물량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정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근로자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일을 증가시키는 등 일과 생활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짧은 단위기간과 까다로운 도입 요건으로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먼저 현재 3개월로 제한되어 있는 단위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는 스마트폰 개발 기업은 통상 출시 예정일 1년 전부터 3~6개월간 집중 개발에 들어간다. 건설이나 조선업도 발주기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마지막 3개월은 집중적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임업계는 제품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모드(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집중근무)가 일반적인데 주 52시간을 지키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신제품 출시 등을 위해 6개월 이상의 장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분야 및 벤처 스타트업, 호황·불황에 따라 수요변동이 큰 기업의 경우 현행 3개월 단위로는 근로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4시간 연속공정이 필요한 장치산업의 경우 일정 수준으로 기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어 근로시간을 장기적으로 분산해 운용해야 하므로 단위기간을 현재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

주문생산이 많은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의 고민은 더욱 크다. 금형 업체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주를 하면 선적까지 6~8주간 밤·주말 근무를 해야 겨우 납기를 맞출 수 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40% 이상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인 현실에서 납기를 맞추기는 3개월 단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수기 집중근로기간에는 숙련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없고 성수기만을 위한 단기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단위기간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이 엄격한 도입 요건이다. 현행법상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면 ‘사전에 근로일과 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특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1천명인 기업은 근로자마다 3개월 단위기간의 출근일과 그날의 근로시간을 사전에 정확히 짜놓아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근로시간을 설정하더라도 중간에 휴가·휴직·퇴사 등 결원이 발생하면 그 내용을 전부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매우 크다. 몇 개월 뒤, 어느 날의 스케줄표를 미리 정확히 짜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 자동차 제조업의 경우 신제품 출시 이후 판매 정도에 따라 생산을 늘려야 할 경우가 생기는데 이러한 상황을 예상해 미리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하기가 어렵다. 제도의 본질을 고려해 근로시간 조정의 ‘기본 계획’만을 협의하는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전체 근로자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 특정 직군 또는 특정 근로자에게 도입하고자 할 때에도 전체 근로자 대표와 합의해야 하다 보니 대상 근로자들의 의사가 왜곡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실제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에 긍정적인 근로자들이 있음에도 노동조합의 반대로 도입조차 못하고 있는 사업장이 있다. 직무별, 부서별로 근로시간 운용이 상이할 것이기 때문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에 대해서는 노무관리 융통성을 위해 해당 근로자 대표와 협의를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고 아직까지는 창의적·선도적 역량이 부족하며 기능적·추격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 경쟁국보다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하는 절대량과 집중도’가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국내외 경영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개선을 통해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강화할 때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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