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10 18:46
수정 : 2018.12.11 13:46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전세계는 12월10일을 ‘세계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 올해는 특히 세계인권선언(UDHR) 채택 7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하루 전날인 12월9일은 ‘인권 운동가의 날’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나온 유엔 헌장은 인종과 성별, 언어,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인권을 보호하고 인류의 기본 자유권을 존중하자는 약속을 담고 있다. 이 유엔 헌장의 후신 격인 세계인권선언은 1948년에 공표됐다. 세계인권선언은 1930년대에 수백만명에게 자행된 끔찍한 악행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누구나 그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자유와 평등을 갖고 태어났고 형제애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유엔 헌장의 정신과 원칙을 중시한다. 한마디로 이는 모든 인류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인류 보편적 선언인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공표한 이 선언문은 왜 아직도 유의미한가? 그것은 세계인권선언이 우리 모두의 인권을 자동 보장하는 ‘요술지팡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이 선언만으로 분쟁을 막거나 누군가에 의해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막지는 못한다. 1948년 이 선언이 발표되던 때도 위법한 범죄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인권 침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권이 존중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일깨워준 시대에 만들어진 이 선언문은 인권 보호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인권 개선은 하룻밤에 진전되지 않으며 수십년에 걸쳐 정부, 시민사회, 인권운동가 등 많은 사람의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진전이 느리지만,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노력이 전세계의 누구에게나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안주하려는 유혹이 쉽게 찾아올 수 있기에 더욱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인류 보편적 인권의 증진과 보호는 영국 정부가 나라 안팎으로 집중하는 핵심 과제다. 영국 정부는 각국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아동기 및 성년기의 완전한 성평등의 중요성,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존중, 현대판 노예를 만드는 범죄 행위의 근절, 성폭력 피해 방지 등 세계인권선언이 지키고자 하는 원칙에 따라 인권을 증진하는 데 필요한 책무를 다할 것이다. 한국과 영국, 양국은 전세계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기구인 유엔인권이사회와 인권고등판무관실 등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양국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한 세계인의 노력에 동참하고 있으며, 북한 인권 상황에도 지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성별에 따른 차별을 줄이는 데 좀 더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현재 118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영국은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
때마침 올해는 영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4월24일 의사당 앞에 여성 인권운동가 밀리선트 포셋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는 영국 의사당 광장에 세워진 최초의 여성 동상이다. 영국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성별 간 임금 격차에 대한 조사를 벌인 국가이기도 하다. 최근 기업 내 성별 간 임금 격차는 과거 어느 때보다 좁혀진 상태이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영국은 격차를 완전히 없애기로 선언했다. 영국은 역대 두번째로 여성 총리가 국가를 책임지고 있으며, 영국 내 중소기업 200만곳이 여성 최고경영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으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국가도 인권과 관련해 흠결 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70년 전 인권선언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인권이 가져다준 혜택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국제사회가 70년 전에 선언했던 보편적 가치들을 지키고 증진하고자 했던 다짐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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