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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초등학생 오후 3시 하교와 출생률 / 황선준 |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국가교육회의 위원·스톡홀름대 정치학 박사
올해 우리나라의 출생률(합계출산율)은 한명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 한명이 평생 낳는 아이가 한명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고령화로 인하여 전체인구는 아직 줄지 않지만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이미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출생률 문제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심각한 문제다.
이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타개책의 하나로 초등 저학년도 고학년과 같이 오후 3시에 하교하는 ‘더놀이학교'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교육과정의 변화 없이 놀이 및 쉬는 시간을 늘려 아이들을 학교에서 돌보게 하여 맞벌이 부모의 양육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찬성하나 학교현장은 업무과중과 그로 인한 교육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출생률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보육과 교육, 청년실업, 주택과도 연계된 아주 복합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문제는 사회 및 가정 내에서의 성평등과 가장 연계가 강하다. 스웨덴은 1930년대에 인구절벽 문제로 난리를 치르고 난 이후 ‘부모보험’이라는 국가 차원의 육아부문 복지제도를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스웨덴의 출생률은 한국의 두배다.
성평등이 출생률과 어떻게 관련이 깊은지, 한국의 성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자. 우선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심하다. 15~54살 사이의 기혼여성 900만명 중 비취업여성은 350만명, 이 중 경력단절여성이 185만명 정도이다. 전체 기혼여성의 20%가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육아 등에 전념하고 있다. 11%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남녀 고용률 차이에서도 현저히 드러난다. 남성 고용률이 71%일 때 여성은 51%밖에 되지 않는다. 직장여성에 대한 차별도 심하다. 여성을 배제하는 ‘유리벽'에서부터 여성의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까지 차별은 광범위하게 만연되어 있다. 북유럽국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40%를 웃돌 때 한국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고작 2%다. 그나마 절반은 가족(아내나 딸)이라니 한국이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가늠이 간다. 국회나 정부, 교수 등 공공기관이나 주요 직책에서의 여성 비율도 유럽나라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남녀 임금격차는 충격적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남짓 밖에 안 된다. 또 자녀 다 키우고 40대 중반 이후 다시 재취업에 뛰어들 때 단순 노무나 서비스업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한국 여성들의 성평등 현주소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7년 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이 144개국 중 118등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일과 가정을 병행 못하게 하는 열악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성차별을 야기하고 역으로 성차별은 다시 사회적 환경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국가가 직장(일)과 가정(육아)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의 부모보험과 같은 복지제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여기에 속하는 주요 제도가 유급육아휴직제도, 양질의 공공유아학교, 방과후 학교 및 돌봄 그리고 아동수당 등이다. 이러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으니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거나 그나마 직장여성인 경우에도 직장 일과 가사 및 육아의 이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을 아직도 견고한 가부장사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가부장사회니 여성이 행복할 수 없고 여성이 행복할 수 없으니 아이도 남성도 행복할 수 없다. 저출생은 이 불행의 파생물이다.
이러한 가부장사회의 고리를 깨고자 하는 것이 초등 저학년의 오후 3시 하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하여 조금이라도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제도의 방향은 분명히 옳고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욕심을 내자면 여기에 보편적 유급육아휴직제도,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통합)과 공립 유아학교의 대폭 확대 및 질 제고, 아동수당, 무상교육 등이 보완돼야 한다.
문제는 초등 저학년의 하교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출 때 그것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다. 학교 현장이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한국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본연의 업무 외에 많은 다른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행정업무 하다 틈날 때 아이를 가르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 3시 하교 정책'은 당연히 업무 가중으로 인식된다. 누가 어떻게 놀이시간을 책임질지에 대해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교육청이 아닌 지자체가 전적으로 놀이업무를 책임져 학교에 업무가 가중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과 둘째, 필요 인력과 예산을 교육청에 투입해 학교가 책임지게 하는 방안이다. 교육과 일반 행정이 분리된 한국의 상황에서 첫째 방안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협력과 책임 문제가 뒤따르고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번째가 대안이다. 농촌지역의 학교는 지금 현재도 학생수가 적고 돌봄인력이 확보되어 있고 놀이공간이 있어 문제가 없지만 도시학교의 경우 과밀학급의 문제뿐만 아니라 돌봄인력과 안전한 놀이공간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있어 이의 해결이 필수적이다. 핵심은 아이들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활동으로 영감을 주고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때 방과후 교사의 전문성이 관건이다. 교육대나 사범대에서 체계적으로 방과후 전문교사를 양성하고 교육청이 이들을 채용하여 방과후 및 돌봄 업무를 관장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초등 3시 하교가 저출생 시대를 타개할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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