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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5 18:38 수정 : 2018.12.06 15:21

오은정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지난달 29일, 한국 대법원은 일제시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내렸다. 양국 정부는 판결 직후 상대국을 향해 격앙된 메시지를 내놓기 바빴지만, 두 정부는 국내 정치와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강경한 입장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한달 사이 이루어진 일련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두고 한국과 일본 정부는 스스로 피해자인 양 행동했다. 냉전시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필요성에 따라 진행된 한-일 회담의 결과에, 식민 정책과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동원되어 피해를 입은 일반 시민들의 개별적인 목소리와 청구 권리가 충분히 포함되지 못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자국의 안보와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1990년대 이후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외교 쟁점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을 때도 양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협상의 주체였다. 원폭 피해자,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 간 협상 결과가 충분치 않아 피해자들의 양국 정부를 상대로 한 개별적인 소송들이 이어졌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그 연장선에 있다. 2011년 8월30일에는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제출한 심판 청구에 대해 한국 헌법재판소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를 놓고 해석 차이가 존재하므로 협정 절차에 따른 외교적 경로로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도 국가가 이를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헌법적 요청에 따른 (국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양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국가 책임에 솔직하지 못하다. 정권의 흥망에 따라 한-일 과거사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계산 위에서 이용하고 여론을 호도했다. 배제된 것은 식민 당국과 해방 이후 개발주의적 독재 국가의 ‘국익’을 위해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 시민들의 목소리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시민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번 미쓰비시 강제징용 판결 건도 그렇지만, 일련의 과거사 관련 소송들은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의 지원에 크게 빚지고 있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만 환원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해온 역사를 저버리게 된다. 이들은 양국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에도 과거사 문제를 시민적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마침 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학창시절 나고야로 강제동원됐던 김성주씨와 이들을 지원해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 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됐다가 원폭 피해를 입은 고 박창환씨 아들 박재훈씨, 그리고 한국 원폭 피해자 중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을 지원해온 ‘한국 원폭 피해자 지원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 회장, 한국에서 관련 소송을 지원해온 최봉태 변호사도 나왔다.

대법원 판결이 실질적 보상으로 이어지려면 복잡한 외교적, 행정적, 법적 절차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국가와 정부가 피해자인 구도가 아니라, 식민과 전쟁, 그리고 안보와 경제 발전에 의해 희생되고 방기돼온 피해자들의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일 회담과 과거 다수의 과거사 문제 협상 주체이자 계승자인 정부 당국자들은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양국 정부는 자국 정부가 취해온 행위를 시민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반영할 책임 있는 태도와 상호 간의 성실한 소통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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