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8 18:32
수정 : 2018.11.28 21:01
최희원
<해커묵시록> 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지난봄 아마존에서 개최한 ‘AWS(아마존 웹서비스) 서밋 서울’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아마존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버너 보겔스는 콘퍼런스 무대를 누비며 전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존이 클라우드 혁명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 엘지(LG) 등 한국의 대기업이 아마존의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느니, 한국과 세계 시장의 점유율이 1등이니 하면서…. 그는 땀을 닦으며 열정적으로 아마존 서비스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도 ‘이제 아마존이 한국 클라우드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아마존 클라우드는 안전지대일까. 일상에서 네이버나 카카오톡, 쇼핑몰 등이 24시간 기능을 멈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혼란은 얼마나 될까.
며칠 전 아마존 웹서비스(AWS)를 사용하는 쿠팡과 넥슨을 비롯한 기업들이 2시간 동안 불통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종의 디지털 블랙아웃이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아마존 웹서비스의 미국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에서 장애가 발생하면서 세계 인터넷 서버의 3분의 1가량이 먹통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콘퍼런스 당시 디지털혁명을 완성시키겠다던 아마존 최고기술책임자를 떠올렸다. 그는 “혁신을 핑계로 보안을 놓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아마존 웹서비스는 2시간여 동안이나 불통됐고 아마존 쪽의 대처 능력도 한심했다. 먹통인 2시간 동안 아마존은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내부 디엔에스(DNS: Domain Name System) 변환 실패’라고 공지했다. 그뿐이었다. 그 외의 자세한 브리핑은 없었다.
이번 사태로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가 더 이상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아마존의 신뢰가 한국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아마존은 그동안 클라우드 서비스를 과신하도록 광고했지만, 재난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고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다. 아마존이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만일 일시적 서비스 장애를 넘어선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국가안보나 의료기관 등으로까지 피해 범위가 확대될 경우에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케이티(KT) 화재사건 이후 재난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든다고 했다. 뭔가 급조된 느낌이다. 케이티 화재도 중요하지만 아마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 정부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아마존에 다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보기술(IT) 인프라는 대재앙의 파국을 일으킬 수 있는 계획적인 공격이나 사소한 시스템 오류에 큰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국가 경제나 사회 기반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고, 존립 기반까지 위협할 수 있다. 교통, 의료, 금융, 항공, 미사일, 핵 관제시스템, 심지어 우주정거장까지 컴퓨터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네트워크로 치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재난과는 거리가 먼 항시운영체제로 알고 있던 클라우드도 한순간에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시대의 구멍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를 피했던 운영체제나 기술은 없었다. 4차 산업혁명도 결국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가 가능하다’는 위험한 논제를 안고 있다. 지나친 과신은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될 수도 있다. 네트워크는 점점 복잡해지고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게다가 모든 시스템은 안전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폭발적인 접속량과 사이버 공격, 임시 기술패치 등을 네트워크가 처리하기에 버거운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뒤에는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이면에는 알지 못하고 생각조차 않던 일들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언젠가 우리 앞에 무서운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그것을 주도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긴 채 넋을 놓고 바라봐야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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