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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8 18:32 수정 : 2018.11.29 10:13

김상천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최근 케이티(KT) 화재로 세상이 멈추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바쁜 세상이 잠시 멈춰 우리에게 여유를 주었다고 낭만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 크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은 손님을 돌려보낸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고, 긴급전화가 되지 않아 인명피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암흑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져야 할까. 아직 어떻게 통신회선만 있는 곳에서 불이 난 것인지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론은 통신회선의 관리 책임이 있는 케이티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통신회선의 관리는 통신회사의 책임이고, 케이티에 비난의 손가락이 향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불이 나기 이틀 전에는 아마존의 서버들에 대한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고도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터넷 주소를 번역해주는 서버에 이상이 생겨 약 84분 정도 서울지역 서버에 접속이 되지 않았고, 아마존의 서버를 사용하는 쇼핑몰, 인터넷 강의, 암호화폐 거래소 등 많은 서비스가 먹통이 됐다.

케이티는 일단 피해를 본 가입자들에게 1개월 사용료를 감면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디지털 재앙의 책임이 통신선로와 서버를 제공해주는 케이티와 아마존이라는 회사에만 있을까?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잘 가려야, 비난을 받아야 하고 배상을 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 식별된다. 또한 앞으로 누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일단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면 케이티나 아마존한테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큰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통신회선이나 서버를 사용할 때 ‘서비스 수준 협약’(SLA: Service Level Agreement)을 체결하는데, 대개 한달에 약 40분이나 4시간 정도는 장애가 나더라도 위 회사들에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그 이상의 장애가 발생했더라도 기껏해야 보통 석달 평균 사용액의 10~50%에 해당하는 요금 이하를 보상하도록 사전에 약정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통신회선이나 서버들을 제공하는 회사들과는 이와 유사한 계약이 이루어진다.

실제 발생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큰데 이렇게 불공정한 계약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많은 사람이나 회사가 참여한다. 케이티의 통신회선에 불이 나서 통신회선을 쓰지 못하면 여기에 관여한 사람이나 회사는 케이티와 음식점 주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드회사도 있고 카드사와 가맹점을 중개하는 회사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간에 책임을 적절히 배분할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이냐면, 통신회선이나 서버의 장애는 언제나 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이러한 장애 발생에 대비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둘 책임은 카드회사나 거래를 중개해주는 회사들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회사와 카드회사 중에 어느 쪽이 더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까? 간단히 말하면 카드 결제를 통해 통신회사보다 카드회사가 얻는 이익이 더 크고, 통신회선 장애는 예상될 수 있기에 이 장애를 감수할지, 돈을 더 들여 통신회선 이중화(하나의 통신회선이 장애가 나면 다른 통신회선을 사용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를 할지 여부는 카드회사의 결정이고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로 인한 책임을 주로 배상해야 하는 주체는 카드회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상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책임을 묻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불이 난 케이티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 불은 꺼졌고, 시선을 돌려 손가락이 향해야 할 곳을 제대로 찾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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