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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2 18:53 수정 : 2005.12.12 18:53

왜냐면

강도높은 구조조정 결과 ‘빚을 갚지 않는 게 아니라 빚을 못 갚게 된’ 신용불량자의 피끓는 호소를 대법원은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정부에서는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금융채무 불이행자라는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35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 서민들이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2등 국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인권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통한 실업과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하여 먹고살 길이 없어진 노동자 서민들이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로 카드 및 개인부채의 변제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지만, 은행과 카드사는 개인의 변제능력을 고려하기보다는 경쟁적으로 공격적 영업에 돌입하면서 부실은 커져만 갔다.

또한 신용불량자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선전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어떻게 해서든지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신용카드 돌려막기, 대환대출 등 ‘빚을 갚기 위해서 빚을 낼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몰려 오히려 채무가 증대되는 악순환 속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신용불량자라는 ‘도덕적 해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350만 노동자 서민들은 ‘빚진 죄’로 끔찍하게도 평생을 빚을 갚을 때까지 모든 인간다운 삶을 유예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외환위기 이후 금융채무의 성격이 신용불량자의 도덕적 해이나 개인의 책임보다는 한국 사회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결과이기에 신용불량자가 아닌 ‘금융피해자’로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대법원은 신용불량자에게 또다른 사회적 범죄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판결을 내렸다. 신용카드를 적법하게 발급받았더라도 나중에 카드빚을 갚지 못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했을 경우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상환능력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해 2570만원의 빚을 진 혐의로 기소된 안아무개씨에 대해 원심의 일부 무죄를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하지만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은 현실 인식이 결여된 판결이라 생각한다. 금융기관과 카드사의 묻지마식 카드 발급과 과도한 고금리, 실업과 고용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신자유주의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결과 ‘빚을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지 못하게 된’ 신용불량자의 피끓는 호소를 대법원은 무참히 짓밟아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법원의 판결에 힘입어 금융기관 및 카드사는 너나 할 것 없이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법률적 대응과 과도한 추심행위를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은 신용불량자들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가로막을 수 있다. 더는 금융회사와 사법기관이 구획해놓은 차별이 ‘신용불량자와 비신용불량자’라는 사회적 주홍글씨가 되어 신용불량자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서창호/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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