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0.31 19:26 수정 : 2018.10.31 19:48

양정숙 변호사·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감사

10대의 꽃다운 소년들은 일본의 제철소에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용광로에서 철이 나오면 가마에 넣거나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트려서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서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위험하고 고된 노역에 종사했다. 그러면서도 매우 적은 양의 식사를 배급받아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헌병과 경찰이 자주 들러서 인원을 점검하고, 도망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고 기숙사에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인 원고 4명 중 3명은 이미 사망하였고, 이춘식 할아버지만 94살이 될 때까지 80년 가까이 엄혹하고 긴 시간을 이번 판결을 기다리며 고통으로 보내왔다.

지난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파기환송심 판결 이후 5년 만에 청구권협정에 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한 판결을 하였다.

핵심 군수업체 신일철주금은 침략전쟁을 위해 강제로 인력을 동원하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반인도적, 반인권적 범죄인 강제징용에 소멸시효는 없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도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음을 천명하며 책임 기업들의 자발적 배상을 권고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은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에 불복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이 불법 식민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후 진정한 사과의 자세를 취하지 않아 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독일은 패전 이후 소위 나치 치하의 비인도적 범죄 피해자들에 대하여 자발적인 보상을 실시하였다. 과거 강제노동자 개인들에 대한 보상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이유로 미국에 소재지를 둔 독일 기업에 대한 강제노동자들의 집단소송이 줄이어 제기되자,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나치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다수의 대리인과 함께 장기간의 논의 끝에 ‘기억, 책임, 미래 재단’을 설립하는 법을 마련했다. 이 재단을 통해서 피해자 개인들이 보상금을 지급받도록 했다. 2007년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 피해자 170만명에게 6조원에 달하는 배상금 지급을 마무리했다. 독일 정부가 절반을 부담했고, 폴크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기업들이 나머지를 냈다.

일본국 헌법 제9조는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으로 인한 전쟁, 무기에 의한 위협과 무력의 행사를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원히 포기한다”고 규정하는 등 과거 일본 정부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의 참화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위치에 설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피고 기업의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은 일본국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이 아니다.

우리 정부 역시 이번 판결이 이행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시작이며, 한-일 간 진정한 평화와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징용 피해 문제를 인권과 정의에 기반하여 해결하기 위하여 대한변협이 마련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인권재단의 설립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심의 중에 있다. 한-일 양국 정부와 책임 기업이 인권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을 통해 손해배상과 연구, 추모사업 등을 한다는 내용이다. 국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위 법률안을 보완·통과시켜 징용 피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힘든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신 피해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강제징용 손배 소송을 심리 중인 법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