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0.31 19:26 수정 : 2018.10.31 20:36

임미리 한신대 학술원 전임연구원

아, 참 억울하다. 택시는 합승이 금지인데 자가용은 요금 받는 카풀이 된단다. 1982년, 택시 합승이 금지됐다. 시민 편의를 위해서라니까, 또는 전두환 정권의 군홧발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2015년에는 새벽 시간대 강남역 부근의 조건부 합승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손님 불편이 이유였다.

억울하다. 택시 합승은 불편한데 자가용 카풀은 편리하단다. 합승 앱을 이용하면 손님도 불편 없고 요금의 정률할인도 가능하다. 하지만 동승자가 누군지 몰라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단다. 택시가 합승하면 위험하고 자가용이 카풀 하면 안전한가. 운전자 신원이 보장되는 택시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카풀이 안전하단 말인가.

억울하다. 택시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뒤 다시 택시운전자격증을 따야 하고 안전교육도 받는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어서다. 그런데 왜, 택시에는 안 됐던 것이 자가용에는 되는가. 택시 타는 손님은 버들잎인데 카풀 하는 승객은 철갑이라도 둘렀단 것인가.

택시노동자라서 빛날 때도 있었다. 1980년 5월 총 든 군인을 막아서 시민들을 보호했을 때, 1987년 6월 경적을 울리며 항쟁을 고무했을 때, 드높은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었다. 사회의 공기였기 때문이다. 시민의 발이고 국민의 다리라서 목숨 걸고 앞장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빛난 것은 잠시였다. 그 수십배의 시간을 노예로 살아야 했다. 지입제와 도급제 철폐, 사납금 폐지와 완전월급제 쟁취를 위해 싸운 것이 수십년이다. 싸움도 쉽지 않았다. 파업하면 구속이다. 자살자도 부지기수다. 자살한 노동열사 64명 중 택시가 13명이다. 열사 아닌 자살자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죽었지만 지입제·도급제는 여전하고 완전월급제 대신 오히려 사납금제가 강화되고 있다. 월 290시간 일하는데 수입은 220만원이 안 된다. 시급 7600원이다. 선거 때마다 처우 개선 공약이 남발됐지만 지켜진 적은 없다.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거비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자녀 교육은 무엇으로 시킵니까?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 넘어가지 않는 놈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살려다 보니 승차거부, 합승행위 등 온갖 불명예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린 친구들끼리도 아버지가 택시기사라고 말 못 하는 세상, 이제는 허탈뿐입니다. 꼭 택시요금을 현실화시켜 주십시오.”

1994년 상호운수 노동자 김성윤이 목을 매기 직전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의 일부이다. 억울한 그이의 소망이 이뤄지기는커녕 후퇴한 게 지금의 실정이다. 왜 항상 택시만 목이 죄여야 하는가. 억울하다. 참 억울하다.

물론 억울한 건 택시뿐만이 아니다. 삼릉오계라는 말이 있다. 서울 강북에 릉 자, 계 자 들어가는 동네다. 나오는 손님이 없어 장거리라도 승차거부를 당한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단거리는 더욱 심하다. 5분이면 갈 길인데 10분을 기다려도 호출 응답이 없다. 노인은 아예 포기다. 뛰어가 승차하지 않으면 꽁무니를 빼버린다. 욕먹지 않으려면 재빨리 하차해야 하고 그러다 서두르면 소지품을 두고 내리기 일쑤다.

전체가 아니라 소수의 일이겠지만 한번이라도 승차거부와 불친절 때문에 약속을 놓치고 온종일 불쾌했다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가. 제도로 풀어줄 수 있다면 제도로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단거리 운행횟수를 의무화하고 승차거부와 불친절에 페널티를 주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러려면 일단 먹고는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카카오는 왜 아무 말이 없을까.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