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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4 18:16 수정 : 2018.10.25 09:29

백승진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축구선수에겐 꿈의 무대이다. 우리 역시 천문학적인 연봉에 전용기를 타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이들의 삶을 한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박지성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가치가 3억파운드(약 4400억원)에 다다를 것으로 봤다. 또한 이 구단의 슈퍼스타인 알렉시스 산체스의 주급은 35만파운드(약 5억원)이며 이는 연간 2400만파운드(약 350억원)로 환산된다.

사실, 영국의 축구 무대는 대략 140개의 리그와 7천여개의 구단으로 구성된다. 산체스와 같은 스타는 한 시즌당 1천만파운드 이상을 받지만 하위 그룹의 선수들은 1만파운드도 채 안 되는 연봉을 받는 등 상위 리그의 평균 연봉은 하위 리그의 2400배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비단 축구리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하버드스포츠분석컬렉티브는 주요 스포츠 리그의 지니계수가 0.5를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경고 신호로 보는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선수들의 임금이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스포츠의 큰 임금 격차를 두고 터무니없다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격차는 스포츠 시장의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을 통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 믿음은 제도 설계자로 하여금 팬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시장을 더 키우는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선수들의 소득 격차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더 흥미진진한 경기 관람을 위해 주머니를 연다. 최근 문제가 된 선수들의 병역 혜택 역시 위 논리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 사회의 소득 격차는 불공정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필자는 지니계수가 말해주지 않는 불평등의 관점에 주목한다. 즉, 스포츠의 ‘공정’ 관점을 우리 사회 부의 격차 문제에 투영시켜보면, 불평등은 지니계수의 숫자가 아닌 우리 인식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여전히 스포츠계에는 파벌 논란이 있지만 그럼에도 스포츠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계층 이동성 정도에 따라 ‘공정’ 대 ‘불공정’ 사회로 구분하는 편인데,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의 사회적 계층 이동성은 현저히 감소하였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오늘날 시대정신으로 부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三代)는 간다”는 말은 스포츠에선 통하지 않는다. 예컨대, 21세기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는 리오넬 메시의 축구 실력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대체적으로 스포츠 선수들의 출발점은 같다.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소득 비율의 감소가 핵심이라고 말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스포츠는 남녀 리그를 구분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럴 수가 없다. 만약 남녀가 동일한 축구리그에서 경쟁한다면, 남자 선수의 신체조건 우위 덕택에 상위 리그는 남자가 독차지할 공산이 크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성차별 문제가 바로 사회불평등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한국을 세계 189개국 중 10번째로 성평등한 나라로 평가했지만, 역설적으로 올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미투운동’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더 세심히 살펴 ‘비례적 평등’이 실현된 사회가 바로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혜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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