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심재철, 노회찬, 최성진 그리고 알권리 / 박경신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기획재정부(기재부) 등 행정기관의 예산 관련 정보를 내려받았고 이를 일부 공개했다고 해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국가예산 관련 정보의 전산 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재정정보원에 대한 감사가 후속으로 계획되고 있는 정황으로 보았을 때 심재철 의원실이 적극적인 해킹을 했다기보다는 재정정보원의 보안시스템이 부실하여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비밀정보가 정보 관리자들의 실수나 묵인하에 유출되었고 누군가 이를 우연히 취득하는 것은 범죄인가? 나아가 여기에 공익적 고발을 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이를 공개하는 행위는 범죄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고 노회찬 의원의 ‘삼성 엑스(X)파일' 사건(즉 노 의원이 삼성그룹 중역들 사이의 대화를 불법 녹취한 파일에 언급된 이른바 ‘떡값' 받는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뼈저리게 고민한 바 있고, 바로 사법농단의 주범 양승태 대법원이 이에 대해 2013년 최종적으로 당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을 세차게 비판한 바 있다.
이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가 정수장학회 이사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마쳤는데 이사장이 실수로 전화기를 끊지 않았고 공교롭게도 당시 <문화방송>(MBC·엠비시) 간부들이 들어와서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모의하던 대화가 녹음되었다. 이 역시 통신비밀보호법 무죄 판결은 받지 못하고 선고유예로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비판한 바 있다. 비판 지점은 허락 없는 엿듣기가 과연 통비법 위반인가였지만 이 또한 우리의 가슴을 친 것은 엿듣기의 공익적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심재철 의원 보좌진 역시 우연히 별다른 위법행위 없이 정보를 취득했고 그 목적도 예산 남용 실태 파악이었다. 이 사건에는 통신비밀보호법과는 다른 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비밀 보호에서 가장 엄중한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인 만큼 다른 법도 위와 같이 국민의 알 권리 입장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땅한 적용 법조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망법)의 해킹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고 국가예산집행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또는 망법의 유사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다. 국가의 예산을 공무원이 공무로 집행하고 있는데 이를 해당 공무원들의 개인정보라고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보호해주면 10년 전 미디어법 날치기 때 국회의원들이 대리투표를 감추기 위해 로비 폐회로텔레비전(CCTV) 내용을 개인정보라며 공개를 거부했던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또 기재부에서는 “국가기밀”을 운운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일반적인 ‘국가비밀보호법’이라는 것이 없다. 공무원들의 보안의무만을 규정한 대통령령인 보안규정이 있을 뿐이며 국가정보원이 오랫동안 이를 형벌을 포함하는 법률로 만들려고 했지만 국민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에 근거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은 모두 국가 안위나 군사에 심대한 영향을 줄 만한 정보로 적용이 한정된다. 국가 공무원법 60조는 신분범죄인데 심재철 의원실 보좌진이 위 정보를 “직무상” 즉 직책에 따라 접근 권한을 갖게 되어 취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이 죄목이 불분명한데도 심재철 사건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법원이 최근 대법원 연구관의 연구보고서 유출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기밀이 심대하지 않다”며 영장 기각을 해놓고 이 사건은 이렇게 쉽게 발부한 것은 일관성이 없다. 자유한국당이 평소에 인권 보호에 입각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요구해왔던 당은 아니지만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만한 빌미를 준 것은 맞는다. 자기 식구 사건만 옳게 처리하려 하니 “방탄판사단”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새 정부하의 검찰도 정부의 정보를 호위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알 권리의 시각에서 이번 수사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