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인도네시아에서 콜트콜텍 예술행동을 하다 / 정윤희 |
2018년 9월27일 오늘은 기타를 만드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 4257일째이다. 한때 세계 기타 점유율 30%에 육박했던 콜트·콜텍 회사의 해외 이전은 신자유주의의 여느 기업들처럼 값싼 노동력으로 이윤을 챙기려 한 속셈이었다. 1993년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 1999년에는 중국 다롄에 공장을 지었고, 2008년 경영난을 이유로 한국의 공장 문을 닫았다. 그리고 최근 콜트 회사는 국내 한 언론을 통해 기타 100만대, 앰프 30만대 생산에 이르렀음을 과시했다.
몇년 전 여행에서 인도네시아 금속산업연맹 소속의 콜트(PT CORT) 노동조합 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콜트가 현지 사람들에게 좋은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빛 한줌 겨우 비치는 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한 한국 노동자들에 비하면 출퇴근, 기도시간 보장, 보너스 등 복리후생이 조금 나아 보이지만 결국 주변 공장보다 임금을 조금 더 주는 것 정도일 뿐이다.
최근 필자는 한국 작가들과 9월14일부터 20일까지 7일간 인도네시아 콜트 악기 공장 앞에서 ‘예술행동 프로젝트’를 했다.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쌓은 왕국을 예술로 직접 확인하고 기록·재현·재구성하여 문제 해결 촉구를 목표했다. 또한 한국적 경영과 노무관리가 반복적인 이곳에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콘셉트의 존엄한 인간이 공존하는 ‘일시적 장소’를 열고 싶었다. ‘헤테로토피아’는 이질적이며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장소를 뜻한다. 2012년 예술적 점거를 한 인천 콜트 악기 공장은 ‘헤테로토피아’였고, 이번 예술행동도 이 연속선상에 있다.
인도네시아의 최신식 공장은 한국보다 규모가 더 커졌지만 예전 공장과 매우 유사했다. 건물, 창문, 환풍구, 지게차, 로고, 유기용제 냄새 등 감지되는 것 하나하나가 십여년 전 한국 공장을 상상하게 했다. 놀라움과 분노, 긴장이 뒤얽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번 예술행동은 정해진 것 없는 불확실한 조건에서 벌어졌다. 매번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판단해야 해서 몇가지 기준을 세웠다. 하나는 이곳 노동자들의 삶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 둘째는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면서 윤리적 태도를 잃지 않는 것, 셋째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지 않으면 버려질 수 있다는 한국 콜트콜텍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 넷째는 점진적으로 프로젝트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었다.
첫날은 아침 출근, 점심, 기도, 교대, 퇴근 시간 등에 노동자들의 움직임과 공간을 조심스레 지켜보며 계획을 세웠다. 둘째 날은 소극적이지만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행동, 셋째 날 이후로는 본격적인 작업을 했다. 콜트 공장 맞은편에 ‘일시적 장소’를 열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읽고 기록했다. 콜트 옆의 빈 공장에서는 상징적으로나마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함께하는 설치작업을 했다.
회사는 분진이 생기고,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공정에도 하늘색 면 소재 마스크만을 지급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 모음과 자음, 알파벳 한자씩을 새긴 방진 마스크를 준비해 노동자들과 나누고 이를 기록했다. 생활의 불편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도 확인했다.
예술행동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한 친구, ‘PT CORT’의 노동자, 12년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한국의 콜트콜텍 노동자, 함께한 작가들 덕분에 가능했다. 비록 우리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횡포 속에서 부유하는 존재일지라도 우리가 용기 내 서로를 지지하는 것은 세상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미약하지만 우리의 예술행동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정윤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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