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경제포럼 참관기
지난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제4차 동방경제포럼 참가자는 6천여명이었다. 역대 최대규모다. 주최 공식 집계에 따르면 중국이 총 1096명, 다음은 일본(570명), 한국(335명) 순이었다. 포럼 기간 내내 중국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동방경제포럼 참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동방경제포럼의 위상을 일거에 격상시키는 ‘대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연히 그의 블라디보스토크 첫 방문을 환영하는 러시아의 환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에너지 광물자원 개발, 교통 물류 인프라 건설 외에도 4차산업혁명 및 디지털경제 관련 이슈가 세션 주제로 올라왔다. 이제 극동지역도 하드웨어 개발 중심의 사고에서 디지털 기술에 기초한 ‘스마트’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푸틴 지지도가 낮았던 극동지역의 주민들이 삶의 조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체감하게 하려면 교육, 의료?보건, 주택 서비스 제공이 시급한 과제인데, 러시아는 이것을 ‘디지털경제’발전 전략과 연계하고 있다. 원격진료, 이러닝, 스마트시티 등이 세션 주제로 선정된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도 극동지역개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를 ‘혁명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포럼에서 주목받은 세션 중 하나는 ‘러시아와 남북한 -새로운 경제협력공간의 미래’제하의 남북러 3각협력 세션이었다. 북한이 참여하는 최초의 고위급 남북러 삼각협력 회의였고, 9월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모종의 획기적인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희망, 교착국면에 빠진 북-미 핵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남북러 세션에는 북한에서는 김윤혁 철도성 부상과 김창식 철도상 부국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의제로는 가스 파이프라인과 전력송배전망 연결도 있었지만, 핵심은 철도 프로젝트, 특히 나진-하산 사업의 재개 여부였다. 남측에서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이성우 박사가 나선경제특구, 러시아 연해주 하산, 그리고 중국 지린성 훈춘을 연결해 초국경 거점으로 만들자는 ‘동북아 평화협력 클러스터’를 제안했다. 석탄 수송에 집중된 나진-하산 물류사업을 그저 복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나선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주변국 접경지역과 연계하여 물류, 산업, 관광 인프라를 연결하는 초국경 융합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진일보한 협력 구상이라 여겼는지 러시아와 북한 패널과 청중들의 지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3국은 공동연구단 구성 외에는 통일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쟁점은 역시 대북 제재였다. 러시아는 나진-하산 사업이 유엔제재의 ‘예외’사항이니 남측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라고 압박했다. 남측은 본질적으로 3각협력이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미국이 ‘용인’한다면 사업 재개가 가능하다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한편 북측은 남-북, 북-미간에 이미 합의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면 되고, 남북러 철도 연결도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을 보여줄 때라며 에둘러 압박을 피해갔다. 좌장을 맡았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 아시아전략센터 소장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회의를 결산하는 글에서 당장 미국의 ‘용인’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남북,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얼마든지 남북이 러시아로 다가가는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동방경제포럼의 하이라이트는 전체회의에 참여한 각국 정상들의 기조연설이지만 포럼 개막에 앞서 러, 중, 일간 릴레이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은 포럼에 맞추어 ‘동방-2018’이라는 최대 규모의 합동군사훈련에 돌입했다. 러시아가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도약을 위한 ‘연대의 축’으로 확증한다는 선포다. 러시아의 한반도 전문가는 양국이 북한 비핵화 접근은 물론 남북을 포함한 극동지역의 초국경 소다자협력에서도 협력 구도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성원용(인천대 교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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