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교수·영문학 나는 지금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 있는 말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바로 서 있어야 사회는 평화롭고 저마다의 삶은 예측가능하기에 정의란 인간다운 삶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땅한 권리는 대다수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 소수의 강자와는 너무도 가깝다. 각자에게 마땅한 권리를 분배하려는 부단한 의지가 바로 정의지만, 정의는 너무도 쉽게 힘의 논리에 굴복되고 소수를 위해 사유화된다. 이처럼 강한 것이 정의로운 세상이 되면 우리 삶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정의란 그 안에 분노를 지니는 것이기에 불의가 누적되면 분노도 누적된다. 이 분노가 강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또 다른 약자를 향한 손쉬운 폭력으로 대체되든 간에 이처럼 늘 분기탱천한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는 만무하다.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도 그 핵심에는 정의에 대한 이런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해온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것으로도 모자라 난민기금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무장세력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추정으로 지원금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그 지원금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지구, 나아가 요르단과 시리아 등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유일한 지원이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트럼프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인도주의를 촉구하는 이런 항의로 미국이 결정을 번복하진 않았다. 특히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오랜 봉쇄로 식수와 전기는 물론이고 길이 640㎞에 높이 8m의 거대한 분리 장벽까지 세워져 소위 ‘지붕 없는’ 거대한 감옥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수시로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격과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사상자가 생긴다. 이런 준전시상황이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역의 청년실업률은 50%를 넘어섰고, 여성실업률은 남성의 두배 이상이나 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직도 부패하고 무능하기만 하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은 20세기의 가장 첨예한 갈등들이 극대화된 채 마치 거대한 분화구처럼 모두 고여 있는 중요한 분쟁지역이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인종차별,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인권과 환경 파괴, 경제봉쇄로 인한 지역갈등과 남녀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극단적인 갈등으로 고통받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하여 팔레스타인은 삶의 곳곳에서 극단적으로 정의가 사라질 경우 인간과 사회에 어떤 고통이 가중되는지를 보여주는 전 지구적인 상징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가 회복될 때 비로소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마찬가지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팔레스타인의 여성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가 서울 은평구가 제정한 제2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분단과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를 사유한 세계적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사하르 칼리파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다양한 불의에 일찍부터 주목한 작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여성들, 그리고 고향의 자연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함으로써 이들을 증오로 가득 찬 테러리스트가 아닌 우리도 아는 고향 사람들이자 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분쟁지역의 한 작가가 얼마나 큰 위로와 혜안을 제시하는지 들어보면 마찬가지로 분열과 분쟁과 불의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듣고 싶으신 독자들에게는 오는 15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사하르 칼리파 초청 심포지엄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왜냐면 |
[왜냐면] 팔레스타인과 정의로운 세상 / 박혜영 |
박혜영
인하대 교수·영문학 나는 지금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 있는 말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바로 서 있어야 사회는 평화롭고 저마다의 삶은 예측가능하기에 정의란 인간다운 삶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땅한 권리는 대다수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 소수의 강자와는 너무도 가깝다. 각자에게 마땅한 권리를 분배하려는 부단한 의지가 바로 정의지만, 정의는 너무도 쉽게 힘의 논리에 굴복되고 소수를 위해 사유화된다. 이처럼 강한 것이 정의로운 세상이 되면 우리 삶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정의란 그 안에 분노를 지니는 것이기에 불의가 누적되면 분노도 누적된다. 이 분노가 강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또 다른 약자를 향한 손쉬운 폭력으로 대체되든 간에 이처럼 늘 분기탱천한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는 만무하다.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도 그 핵심에는 정의에 대한 이런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해온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것으로도 모자라 난민기금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무장세력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추정으로 지원금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그 지원금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지구, 나아가 요르단과 시리아 등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유일한 지원이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트럼프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인도주의를 촉구하는 이런 항의로 미국이 결정을 번복하진 않았다. 특히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오랜 봉쇄로 식수와 전기는 물론이고 길이 640㎞에 높이 8m의 거대한 분리 장벽까지 세워져 소위 ‘지붕 없는’ 거대한 감옥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수시로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격과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사상자가 생긴다. 이런 준전시상황이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역의 청년실업률은 50%를 넘어섰고, 여성실업률은 남성의 두배 이상이나 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직도 부패하고 무능하기만 하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은 20세기의 가장 첨예한 갈등들이 극대화된 채 마치 거대한 분화구처럼 모두 고여 있는 중요한 분쟁지역이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인종차별,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인권과 환경 파괴, 경제봉쇄로 인한 지역갈등과 남녀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극단적인 갈등으로 고통받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하여 팔레스타인은 삶의 곳곳에서 극단적으로 정의가 사라질 경우 인간과 사회에 어떤 고통이 가중되는지를 보여주는 전 지구적인 상징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가 회복될 때 비로소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마찬가지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팔레스타인의 여성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가 서울 은평구가 제정한 제2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분단과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를 사유한 세계적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사하르 칼리파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다양한 불의에 일찍부터 주목한 작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여성들, 그리고 고향의 자연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함으로써 이들을 증오로 가득 찬 테러리스트가 아닌 우리도 아는 고향 사람들이자 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분쟁지역의 한 작가가 얼마나 큰 위로와 혜안을 제시하는지 들어보면 마찬가지로 분열과 분쟁과 불의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듣고 싶으신 독자들에게는 오는 15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사하르 칼리파 초청 심포지엄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인하대 교수·영문학 나는 지금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 있는 말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정의가 바로 서 있어야 사회는 평화롭고 저마다의 삶은 예측가능하기에 정의란 인간다운 삶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땅한 권리는 대다수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 소수의 강자와는 너무도 가깝다. 각자에게 마땅한 권리를 분배하려는 부단한 의지가 바로 정의지만, 정의는 너무도 쉽게 힘의 논리에 굴복되고 소수를 위해 사유화된다. 이처럼 강한 것이 정의로운 세상이 되면 우리 삶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정의란 그 안에 분노를 지니는 것이기에 불의가 누적되면 분노도 누적된다. 이 분노가 강자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든, 아니면 또 다른 약자를 향한 손쉬운 폭력으로 대체되든 간에 이처럼 늘 분기탱천한 사회가 지속가능할 리는 만무하다.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도 그 핵심에는 정의에 대한 이런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해온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선언한 것으로도 모자라 난민기금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무장세력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추정으로 지원금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그 지원금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지구, 나아가 요르단과 시리아 등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유일한 지원이었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트럼프의 결정을 비난했지만 인도주의를 촉구하는 이런 항의로 미국이 결정을 번복하진 않았다. 특히나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오랜 봉쇄로 식수와 전기는 물론이고 길이 640㎞에 높이 8m의 거대한 분리 장벽까지 세워져 소위 ‘지붕 없는’ 거대한 감옥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수시로 떨어지는 이스라엘군의 폭격과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사상자가 생긴다. 이런 준전시상황이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역의 청년실업률은 50%를 넘어섰고, 여성실업률은 남성의 두배 이상이나 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직도 부패하고 무능하기만 하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은 20세기의 가장 첨예한 갈등들이 극대화된 채 마치 거대한 분화구처럼 모두 고여 있는 중요한 분쟁지역이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인종차별, 폭력과 전쟁으로 인한 인권과 환경 파괴, 경제봉쇄로 인한 지역갈등과 남녀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사람부터 자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극단적인 갈등으로 고통받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게 하여 팔레스타인은 삶의 곳곳에서 극단적으로 정의가 사라질 경우 인간과 사회에 어떤 고통이 가중되는지를 보여주는 전 지구적인 상징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의가 회복될 때 비로소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이런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마찬가지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된다. 이번에 팔레스타인의 여성 작가인 사하르 칼리파가 서울 은평구가 제정한 제2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분단과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를 사유한 세계적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사하르 칼리파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 다양한 불의에 일찍부터 주목한 작가다. 그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여성들, 그리고 고향의 자연에 대해 오랫동안 묵상함으로써 이들을 증오로 가득 찬 테러리스트가 아닌 우리도 아는 고향 사람들이자 보편적인 인간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분쟁지역의 한 작가가 얼마나 큰 위로와 혜안을 제시하는지 들어보면 마찬가지로 분열과 분쟁과 불의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듣고 싶으신 독자들에게는 오는 15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리는 사하르 칼리파 초청 심포지엄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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