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사건. 그 또 하나의 ‘현장’이 일본 오사카였음을 아는 한국인은 얼마나 있을까? 제주와 오사카의 인연은 오래되고 깊다. 주지하다시피 오사카는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제주 출신이 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제 식민 지배 아래 제주도민은 먹고살기 위해 당시 일본 최대의 공업 지대였던 오사카 돈을 벌러 나가 그대로 정착했다. 오사카의 제주 출신자는 1934년 약 3만7000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이 밑바닥 노동자로 일본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에 편입되는 한편 민족해방을 추구해 오사카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담당했다. 해방 후 많은 제주 출신자가 일단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일본과 관계 단절에 따른 송금 두절, 생필품 부족, 콜레라 유행, 대흉작, 취업난 등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기점으로 여겨지는 1947년 3·1절 발포 사건 뒤, 다시 일본으로 도항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정치 난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4·3의 참극은 일본으로 건너간 관계자나 평양을 경유한 외신을 통해 재일동포 사회에도 전해졌다. 그로 인해 1949년 오사카 각지에서 제주 출신자들이 중심이 돼 추모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4·3사건은 오랫동안 하나의 ‘금기’가 됐다. 그런 경향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4·3사건 희생자 유족과 ‘정치 난민’이 집중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금기를 깨고 처음으로 위령제가 거행된 것은 제주 무장봉기로부터 50년이 흐른 1998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오사카에 사는 유족들을 비롯해, 은폐되어온 4·3사건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려는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해마다 위령제, 강연회, 영화상영회, 사진전, 패널전 등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려왔다. 일본인인 필자도 일찍이 일제 식민지시대 제주 민족운동을 연구한 인연으로 이 활동에 참가해왔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오사카에서 열린 위령제와 국제 심포지엄 등의 행사는 성공리에 끝났다. 위령제 실행위원회에서는 이 기회에 4·3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후세에 전하고 희생자를 추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는 물론 최근 제주 각지에서 4·3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을 보면서 얻은 착상이다. 다행히 취지에 찬동한, 재일동포 사회와 인연이 깊은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도코쿠사(통국사)에서 부지를 제공해줘 11월에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위령비 건립에는 약 350만엔(약 3500만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국 모금계좌는 KB국민은행 874101-01-121151(예금주 김한나) 또는 KEB하나은행 134-891211-00207(예금주 김한나)이다. 사업의 상세한 내용은 위령비 건립 실행위원회의 한국어 누리집(43osaka.hatenablog.com/entry/2018/06/10/110000)을 참조하면 된다.
왜냐면 |
[왜냐면] 일본 오사카에 제주 4·3 위령비 세운다 / 후지나가 다케시 |
후지나가 다케시
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사건. 그 또 하나의 ‘현장’이 일본 오사카였음을 아는 한국인은 얼마나 있을까? 제주와 오사카의 인연은 오래되고 깊다. 주지하다시피 오사카는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제주 출신이 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제 식민 지배 아래 제주도민은 먹고살기 위해 당시 일본 최대의 공업 지대였던 오사카 돈을 벌러 나가 그대로 정착했다. 오사카의 제주 출신자는 1934년 약 3만7000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이 밑바닥 노동자로 일본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에 편입되는 한편 민족해방을 추구해 오사카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담당했다. 해방 후 많은 제주 출신자가 일단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일본과 관계 단절에 따른 송금 두절, 생필품 부족, 콜레라 유행, 대흉작, 취업난 등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기점으로 여겨지는 1947년 3·1절 발포 사건 뒤, 다시 일본으로 도항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정치 난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4·3의 참극은 일본으로 건너간 관계자나 평양을 경유한 외신을 통해 재일동포 사회에도 전해졌다. 그로 인해 1949년 오사카 각지에서 제주 출신자들이 중심이 돼 추모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4·3사건은 오랫동안 하나의 ‘금기’가 됐다. 그런 경향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4·3사건 희생자 유족과 ‘정치 난민’이 집중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금기를 깨고 처음으로 위령제가 거행된 것은 제주 무장봉기로부터 50년이 흐른 1998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오사카에 사는 유족들을 비롯해, 은폐되어온 4·3사건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려는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해마다 위령제, 강연회, 영화상영회, 사진전, 패널전 등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려왔다. 일본인인 필자도 일찍이 일제 식민지시대 제주 민족운동을 연구한 인연으로 이 활동에 참가해왔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오사카에서 열린 위령제와 국제 심포지엄 등의 행사는 성공리에 끝났다. 위령제 실행위원회에서는 이 기회에 4·3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후세에 전하고 희생자를 추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는 물론 최근 제주 각지에서 4·3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을 보면서 얻은 착상이다. 다행히 취지에 찬동한, 재일동포 사회와 인연이 깊은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도코쿠사(통국사)에서 부지를 제공해줘 11월에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위령비 건립에는 약 350만엔(약 3500만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국 모금계좌는 KB국민은행 874101-01-121151(예금주 김한나) 또는 KEB하나은행 134-891211-00207(예금주 김한나)이다. 사업의 상세한 내용은 위령비 건립 실행위원회의 한국어 누리집(43osaka.hatenablog.com/entry/2018/06/10/110000)을 참조하면 된다.
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제주 4·3사건. 그 또 하나의 ‘현장’이 일본 오사카였음을 아는 한국인은 얼마나 있을까? 제주와 오사카의 인연은 오래되고 깊다. 주지하다시피 오사카는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제주 출신이 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제 식민 지배 아래 제주도민은 먹고살기 위해 당시 일본 최대의 공업 지대였던 오사카 돈을 벌러 나가 그대로 정착했다. 오사카의 제주 출신자는 1934년 약 3만7000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이 밑바닥 노동자로 일본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에 편입되는 한편 민족해방을 추구해 오사카의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담당했다. 해방 후 많은 제주 출신자가 일단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일본과 관계 단절에 따른 송금 두절, 생필품 부족, 콜레라 유행, 대흉작, 취업난 등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기점으로 여겨지는 1947년 3·1절 발포 사건 뒤, 다시 일본으로 도항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정치 난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4·3의 참극은 일본으로 건너간 관계자나 평양을 경유한 외신을 통해 재일동포 사회에도 전해졌다. 그로 인해 1949년 오사카 각지에서 제주 출신자들이 중심이 돼 추모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4·3사건은 오랫동안 하나의 ‘금기’가 됐다. 그런 경향은 오히려 지금의 한국 사회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4·3사건 희생자 유족과 ‘정치 난민’이 집중 거주하는 오사카에서 금기를 깨고 처음으로 위령제가 거행된 것은 제주 무장봉기로부터 50년이 흐른 1998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오사카에 사는 유족들을 비롯해, 은폐되어온 4·3사건의 진실을 사회에 알리려는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해마다 위령제, 강연회, 영화상영회, 사진전, 패널전 등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려왔다. 일본인인 필자도 일찍이 일제 식민지시대 제주 민족운동을 연구한 인연으로 이 활동에 참가해왔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오사카에서 열린 위령제와 국제 심포지엄 등의 행사는 성공리에 끝났다. 위령제 실행위원회에서는 이 기회에 4·3의 비극을 역사적 교훈으로 후세에 전하고 희생자를 추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는 물론 최근 제주 각지에서 4·3 희생자 위령비가 건립되는 것을 보면서 얻은 착상이다. 다행히 취지에 찬동한, 재일동포 사회와 인연이 깊은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도코쿠사(통국사)에서 부지를 제공해줘 11월에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위령비 건립에는 약 350만엔(약 3500만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줬으면 한다. 한국 모금계좌는 KB국민은행 874101-01-121151(예금주 김한나) 또는 KEB하나은행 134-891211-00207(예금주 김한나)이다. 사업의 상세한 내용은 위령비 건립 실행위원회의 한국어 누리집(43osaka.hatenablog.com/entry/2018/06/10/110000)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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