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8 22:17
수정 : 2005.12.08 22:17
왜냐면
이번 파문에서 드러난 비이성적인 애국주의, 혹은 국익적 시각, 더 넓게는 국가주의에 대한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파문으로 한국 사회가 내홍을 앓고 있다. 문화방송의 사과보도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연구의 윤리 문제와 진위 문제의 해결을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이번 파문 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그늘진 모습을 성찰하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특히 이번 파문에서 드러난 비이성적인 애국주의, 혹은 국익적 시각, 더 넓게는 국가주의에 대한 성찰의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국익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수단이나 자원으로 간주하는 사고다. 피디수첩이 황우석 교수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실 그 내용에 대해서 사과하는 그 순간에 문화방송사 앞에서는 항의 촛불시위가 벌어졌고 ‘난자 기증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이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난치병 치료를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희생하고자 하는 헌신의 마음들이 흐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불임의 위험까지도 수반되는, 나아가 여성의 몸에 큰 상처를 남기는 일 자체를,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수준에서 행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짚어볼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국익’이라고 하는 준거가 거기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기간 중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였던 일본의 일그러진 애국주의가 내장하는 남성적 국가관과 국익관에 우리는 모두 항의한다. 이것은 물론 다른 경우다. 국익에도 도움이 되고 난치병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 순수한 애국주의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너무도 엄청난 일을 너무도 쉽게 행할 때 갖는 불안함을 이번 파문에서 나는 솔직히 가졌다.
둘째,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세계적인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서, 윤리적 준칙을 쉽게 수단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다. 난자매매나 연구원 난자 기증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실 황 교수 연구팀들이 ‘의도적’으로 행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자 매매나 연구원 난자 기증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로 행한 우리의 일상적인 윤리적 문화를 황 교수가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황우석 교수와 같은 세계적인 학자도 윤리적 문화라는 점에서는 우리하고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역설적으로 나는 가졌다. 국제경쟁력 강화가 최대의 화두가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면서, ‘성취 지향적’으로 문제를 보려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이처럼 윤리적 준칙들을 수단화하는 문화는 강해지고 있다. 선진국다운 윤리적 준칙이 없기 때문에, 또한 난자 기증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국익 우선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황우석 교수의 쾌거가 나온다는 비아냥을 말끔히 넘어서는 성찰의 시간을 이번에 가져야 한다.
셋째, 잘나가고 있는 국가적 연구, 국빈급 경호를 받는 이런 연구에 흠집을 내는 언론 보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는 도구적 인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많은 누리꾼들이 “이런 엄청난 국익 사안을 그냥 넘어가면 되지 왜 굳이 문제삼느냐”는 식의 생각을 한다. 물론 취재과정의 협박에 준하는 행위가 있었으므로 피디수첩팀은 언론 윤리라는 측면에서 엄중한 문책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오더라도, 언론이 진실을 파헤치려는 역할과 그 공간은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피디수첩 팀의 취재 과정의 문제점을 문책하면서도 피디수첩의 용기를 간직하면서 여전히 남은 쟁점들을 진실의 관점에서 해결해 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
마주 보고 달리던 피디수첩 팀과 황우석 팀의 질주는 홀연히 멈춘 듯하다. 모두가 한발짝씩 물러서서 이 문제를 성숙하게 해결해가려는 노력이 지금부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제3의 기관에 의한 검증이 이루어지거나 과학계가 나서서 이 문제를 재정리해가는 이면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 속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비이성적인 애국주의의 모습들을 성찰해 가야 한다. 성찰의 촛불은 문화방송사 앞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도 밝혀져야 한다.
조희연/성공회대·사회과학부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