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제공한 초기 임신중절술인 월경조정술
지승경미네소타대학교 박사과정 지난 5월24일 헌법재판소 대법정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법무부는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청구인 쪽은 임신중절 수술을 제공하였던 한 산부인과 의사를 변호하며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의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지난 8월17일 보건복지부는 임신중절 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고 처벌 의지를 비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태아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 대립 구도나, 의료인의 도덕성 논쟁에서 빠져버린 주체가 있으니, 바로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서 인공임신중절의 한 방법인 ‘월경조절술’을 15년 넘게 제공한 대한가족계획협회(현 인구보건복지협회)와 협회를 관리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이다. <가협삼십년사> 등 대한가족계획협회(가협)의 여러 문건을 보면, 대한가족계획협회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178만9442건의 초기 인공임신중절 수술인 ‘월경조절술’을 제공하였다.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은 낙태라는 단어가 불러오는 부정적 의미를 피하기 위해 붙인 완곡어법으로, 확실한 임신 검사가 가능한 시기 이전에 수술이 시행되기 때문에 임신이 확인된 후 시행하는 소파수술과는 다르다. 1974년에 출판된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의 한 논문에 따르면, 월경조절술을 시행한 후 현미경 등을 이용해 임신 검사를 한 결과, 무월경 35일 이하는 약 50%가 임신이었고, 43~45일 사이에 이루어진 월경조절술의 경우 100%가 임신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월경조절술은 흡입기(vacuum aspiration)를 이용한 인공임신중절 시술로 1970년대부터 미국, 중국, 세네갈, 방글라데시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소파수술보다 비교적 간단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는 1974년부터 대한가족계획협회가 그 부속 의원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이 수술을 제공하였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 연세대 의과대학 산부인과 수태조절실, 전북국립대학교 병원, 이화대학병원 산부인과, 순천향의대 등에서 흡입 임신중절법이 임상으로 실시되었고 이에 대한 연구논문도 다수 출판되었다. 월경조절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2012년 보고서에도 수술적 임신중절(surgical abortion)로 분류되고 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 역시 월경조절술을 도입할 때부터 이 시술이 낙태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었다. 1978년 12월에 발간된 <인구 및 가족계획 통계자료집 제1권>은 월경조절술을 “초기 임신중절”(Early Abortion)이라고 분류했다. 협회는 또한 월경조절술의 불법성도 지적하고 있었다.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1975년도에 출판한 <월경조절법에 대한 연구>는 “(월경조절이) 인공임신중절과 구분되는 특성이 명확치 않아 종교적, 법적 쟁점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월경조절법의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기까지의 과정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 최소한의 사회적인 사용 규제는 계속 존재할 것이므로 월경조절법의 의학적, 도덕적 한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즉 월경조절술 제공은 합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1990년까지 관련 법적 논쟁은 없었고 수술은 계속 제공되었다. 월경조절술은 출산율을 낮추기 위한 “실적”에 포함되었고, 이는 말할 것도 없이 1953년에 제정된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와 270조를 위반한 것이었다. 이 ‘실적’ 자료들에 따르면 ‘비도덕적 의료행위’인 낙태를 제공한 것은 대한가족계획협회와 이 협회를 관리한 보건사회부다. 이렇게 법을 무시한 초기 낙태 제공은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서 피임을 실천하지 않은 여성을 “색출”하고자 했던 가족계획협회의 돌진적인 사업추진과 연관되어 있다. “단산하기를 원하면서도 피임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전체 가임부의 21%에 해당하는 대상을 색출, 포섭함으로써 당면 목표인 60% (피임) 실천율 제고를 성취하고 출생률 역시 20%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아울러, 종래 35세 이상의 단산을 원하는 연령층에 치중했던 권장 대상을 두 아이 출산이 끝나는 30대 초기 연령층으로 끌어내리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겠다.”(<한국가족계획십년사>, 대한가족계획협회, 1975) 2012년 헌법재판소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대립한다고 보고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위의 자료가 보여주듯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결정은 사익으로 보기 어렵다. 법정에서 여성의 임신중절이 ‘사적인 결정’으로 인정되는 때는 여성이나 조산사, 산부인과 의사 등이 낙태로 처벌받는 경우뿐이었다. 형법을 적용할 때는 여성이나 의료진 개인의 범죄가 되고, 형법을 적용하지 않은 가족계획상의 낙태는 출산율 저하에 공헌한 ‘실적’이 된 것이다. 또한 정부는 높은 인공임신중절률이 출산율 저하에 기여하는 점을 파악하고 1973년 낙태의 부분 합법화를 추진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인공임신중절을 부분적으로 합법화한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성취”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모자보건법이 제정 시행됨으로써 법적 문제점으로 대두되어오던 인공임신중절의 합법화가 일부 성취되었으며… 각층 국민들이 가족계획운동에 참여하게 되어 인구증가율 1.5%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했다.”(<가협이십년사, 1983>) 1975년에 발간된 <한국가족계획십년사>에는 1973년에 “보사부, 인공유산 수술 보조비 정부 지원”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1974년은 흡입 임신중절 기구가 한국으로 막 도입되어 이에 대한 임상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더한 문제는 모자보건법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인구 통제와 가족계획을 목적으로 한 임신중절은 형법이나 모자보건법에 따라 한번도 합법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사부는 다른 피임기구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인공유산 수술에도 보조비를 지원했다. 보건복지부와 가족계획협회는 이에 대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여성이 낙태를 하면 불법이라고 처벌하면서, 정부 및 국가의 관리를 받는 가족계획협회가 낙태를 해주면 정책적인 성취가 되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임신중절이 가진 두 가지 얼굴이었다.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법무부와 낙태반대운동단체들은 보건사회부와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조사하고 고소해야 한다.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정부와 대한가족계획협회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낙태에 반대하는 프로라이프(pro-life)와 여성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가 대립할 사안이 아니다. 월경조절술은 여성의 인권과 안전뿐만 아니라 태아의 생명 보호에서도 국가가 유죄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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