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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15 17:48 수정 : 2018.08.15 20:35

한전이 올해 상반기 8천억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은 정부의 월성1호기 폐쇄, 엄격해진 안전점검 등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력수급 위기와 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 확대로 고유가를 극복한다’는 전력정책과 함께 정비기간 단축, 건너뛰기 등 무리한 원전가동을 독려했던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한전은 2008년 2조8천억원, 2011년 1조원 등 훨씬 큰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원자력계의 주장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정작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의 핵심은 석탄, 가스 등 연료가격 상승에도 원가의 전기요금 반영을 막는 정부 규제에 있다. 사실 2010년 정부고시에는 원가변동이 자동으로 요금에 반영되는 이른바 ‘발전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었지만 그 뒤 8년 동안 정부가 시행을 막고 있다.

가격의 수요공급 조절기능은 모든 시장의 기본 토대임에도 전기요금만 정부가 지지율 관리를 위해 통제할 경우 소비자들이나 납세자들이 나중에 훨씬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전 적자분 보전에 67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수요 폭증으로 2011년에는 가정, 병원, 은행, 중소업체 등 총 656만가구가 단전된 ‘9·15 정전사태’까지 이어졌다.

전기요금 통제의 후유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난방용 전력수요까지 급증해 여름, 겨울을 가리지 않고 피크부하(최대전력수요)가 발생해 발전소 정비기간을 찾기도 빠듯해졌고,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비 비용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향후 비용절감을 위해 발전소 부품들도 저가의 중국산으로 교체해야 할지 모른다.

최근 정부의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로 가구당 2만원 할인에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들이 나오는 이유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4인 가구 기준 월평균 통신비용으로 21만원을 내는 국민들은 단순히 ‘싼 전기요금’이 아닌 합리적 요금체계를 바라는 것이다. 상용화된 지 100년이 넘은 기계식 계량기와 한짝인 누진제는 디지털 시대에는 불합리하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시간대별로 합리적 요금 부과가 가능한 스마트미터의 보급률이 각각 70%, 50%에 도달했다. 국내의 경우 보급을 시작한 지 8년째에도 25%에 머물러 있고, 그나마도 산업용과 일반용이 전부다. 한전에 구식 계량기 검침원들의 고용 보장도 요구하는 국내 전력시장 규제가 스마트미터 보급도 막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전력산업은 물가 안정, 제조업 지원 등 정부 경제정책의 보조수단 정도로 취급되지만, 세계적으로 전력산업은 정보통신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탈바꿈했다. 이웃 일본은 무려 40기가 넘는 원전이 정지해 있고, 요란한 ‘4차 산업혁명’ 구호도 없지만 전력, 통신, 도시가스가 하나의 결합상품으로 통합되어 혁신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협소하고 도식적인 연구개발 정도로 여길 뿐, 정작 변화를 주도할 전력산업을 ‘원전 가동기 수’나 따지는 구시대 논쟁에 가두고 있다. 정부는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전기요금 통제나 칸막이식 독점 전력시장을 유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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