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고 3학년 지난 6월13일, 투표장으로 변한 학교 대신 독서실로 향했다. 아무도 청소년의 의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은 채 말이다. 다변하는 대입제도에 적응하려면 공부 외의 생각은 사치인 듯 인식되고, 이를 내면화하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물며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는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 10대의 의견은 조사되지도 않는다. 유권자가 아니라서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은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정치적 역량을 끊임없이 쌓아왔다. 2016년 겨울, 나의 선배들은 고등학교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전국에서는 수많은 청소년이 상경해 집회를 벌였다. 2008년 여름, 촛불을 든 여고생은 집회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1987년 여름과 1960년 봄에도 청소년은 격변의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은 정작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올해 중3 학생들의 대입제도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청소년의 목소리는 없었다. 정책의 당사자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어떤 안이 합의·도출된다 하더라도 쉽게 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장구한 변천사를 책으로 정리한다면 승정원일기에 필적하는 역사서가 되지 않을까. 청소년이 참정권을 가지고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면 입시제도가 이리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운영 및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은 의사 반영을 요구하고 싶어도 교육감 선거에서조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펜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다. 대의제하에서 선거는 국민 주권의 꽃이다. 그렇기에 선거권 등 참정권의 기준 연령을 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18살 청소년은 법령에 따라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원입대도 할 수 있으며, 운전면허도 딸 수 있다. 8급 이하 공무원에 임용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투표는 하지 못한다. 현행법은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과 정당 당원 및 발기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를 혁명이라고 칭하는 정치인에게 선거권 연령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냐 묻고 싶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는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왜 청소년의 독자적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은 자부하지 못할까? 선거제도를 둔 230여개 국가 중 무려 93%가 만 18살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살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정당 가입 연령의 경우 독일 기민당은 16살, 프랑스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은 15살, 독일 사민당은 14살에 이를 정도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정당 가입과 활동의 권리는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학교의 ‘정치화’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학교의 정치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전제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학교만 정치로부터 떨어진 곳이 될 수 없고 이미 교육정책은 정치의 영향력 밖에 있지 않다. 정치에 관한 부정적 선입견이 정치화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나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정치화 우려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선거권 연령 기준 하향은 민주국가를 향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간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져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너무나도 제약받아왔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보듯, 연령 기준은 사회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한 것이다. 이제 그 기준을 조정할 때가 왔다. 이를 시작으로 청소년의 정치참여가 더 늘고, 시민들의 관점 또한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청소년도 국민이다.
왜냐면 |
[왜냐면] 교복 입은 유권자가 보고 싶다 / 신강희 |
신강희
중동고 3학년 지난 6월13일, 투표장으로 변한 학교 대신 독서실로 향했다. 아무도 청소년의 의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은 채 말이다. 다변하는 대입제도에 적응하려면 공부 외의 생각은 사치인 듯 인식되고, 이를 내면화하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물며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는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 10대의 의견은 조사되지도 않는다. 유권자가 아니라서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은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정치적 역량을 끊임없이 쌓아왔다. 2016년 겨울, 나의 선배들은 고등학교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전국에서는 수많은 청소년이 상경해 집회를 벌였다. 2008년 여름, 촛불을 든 여고생은 집회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1987년 여름과 1960년 봄에도 청소년은 격변의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은 정작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올해 중3 학생들의 대입제도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청소년의 목소리는 없었다. 정책의 당사자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어떤 안이 합의·도출된다 하더라도 쉽게 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장구한 변천사를 책으로 정리한다면 승정원일기에 필적하는 역사서가 되지 않을까. 청소년이 참정권을 가지고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면 입시제도가 이리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운영 및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은 의사 반영을 요구하고 싶어도 교육감 선거에서조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펜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다. 대의제하에서 선거는 국민 주권의 꽃이다. 그렇기에 선거권 등 참정권의 기준 연령을 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18살 청소년은 법령에 따라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원입대도 할 수 있으며, 운전면허도 딸 수 있다. 8급 이하 공무원에 임용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투표는 하지 못한다. 현행법은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과 정당 당원 및 발기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를 혁명이라고 칭하는 정치인에게 선거권 연령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냐 묻고 싶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는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왜 청소년의 독자적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은 자부하지 못할까? 선거제도를 둔 230여개 국가 중 무려 93%가 만 18살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살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정당 가입 연령의 경우 독일 기민당은 16살, 프랑스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은 15살, 독일 사민당은 14살에 이를 정도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정당 가입과 활동의 권리는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학교의 ‘정치화’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학교의 정치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전제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학교만 정치로부터 떨어진 곳이 될 수 없고 이미 교육정책은 정치의 영향력 밖에 있지 않다. 정치에 관한 부정적 선입견이 정치화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나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정치화 우려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선거권 연령 기준 하향은 민주국가를 향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간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져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너무나도 제약받아왔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보듯, 연령 기준은 사회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한 것이다. 이제 그 기준을 조정할 때가 왔다. 이를 시작으로 청소년의 정치참여가 더 늘고, 시민들의 관점 또한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청소년도 국민이다.
중동고 3학년 지난 6월13일, 투표장으로 변한 학교 대신 독서실로 향했다. 아무도 청소년의 의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쓴웃음을 지은 채 말이다. 다변하는 대입제도에 적응하려면 공부 외의 생각은 사치인 듯 인식되고, 이를 내면화하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물며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는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에 10대의 의견은 조사되지도 않는다. 유권자가 아니라서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은 정치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정치적 역량을 끊임없이 쌓아왔다. 2016년 겨울, 나의 선배들은 고등학교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전국에서는 수많은 청소년이 상경해 집회를 벌였다. 2008년 여름, 촛불을 든 여고생은 집회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1987년 여름과 1960년 봄에도 청소년은 격변의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청소년은 정작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는 올해 중3 학생들의 대입제도를 결정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청소년의 목소리는 없었다. 정책의 당사자가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어떤 안이 합의·도출된다 하더라도 쉽게 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장구한 변천사를 책으로 정리한다면 승정원일기에 필적하는 역사서가 되지 않을까. 청소년이 참정권을 가지고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면 입시제도가 이리 시시각각 변화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운영 및 교육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은 의사 반영을 요구하고 싶어도 교육감 선거에서조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펜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다. 대의제하에서 선거는 국민 주권의 꽃이다. 그렇기에 선거권 등 참정권의 기준 연령을 정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18살 청소년은 법령에 따라 결혼도 할 수 있고, 자원입대도 할 수 있으며, 운전면허도 딸 수 있다. 8급 이하 공무원에 임용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투표는 하지 못한다. 현행법은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과 정당 당원 및 발기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를 혁명이라고 칭하는 정치인에게 선거권 연령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냐 묻고 싶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는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왜 청소년의 독자적 인지능력과 판단능력은 자부하지 못할까? 선거제도를 둔 230여개 국가 중 무려 93%가 만 18살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9살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정당 가입 연령의 경우 독일 기민당은 16살, 프랑스 사회당과 영국 노동당은 15살, 독일 사민당은 14살에 이를 정도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정당 가입과 활동의 권리는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학교의 ‘정치화’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학교의 정치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전제부터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학교만 정치로부터 떨어진 곳이 될 수 없고 이미 교육정책은 정치의 영향력 밖에 있지 않다. 정치에 관한 부정적 선입견이 정치화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나 정치적 기본권의 보장을 정치화 우려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선거권 연령 기준 하향은 민주국가를 향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간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여겨져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너무나도 제약받아왔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보듯, 연령 기준은 사회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한 것이다. 이제 그 기준을 조정할 때가 왔다. 이를 시작으로 청소년의 정치참여가 더 늘고, 시민들의 관점 또한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청소년도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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