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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4 18:32 수정 : 2018.07.04 19:13

오은정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1928년생인 김성현(가명)씨는 일본 강점기 때 대구에 가지고 있던 땅 3천평을 일본인들이 경마장을 짓는다고 헐값에 사 가는 바람에 생계가 어려워져 히로시마로 건너가게 되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주요한 군사도시로 성장한 히로시마는 전시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군사시설과 군수품 공장 등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합천을 비롯해 경남과 경북 일대의 조선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규모로 이주해 간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였다. 김씨는 그 많은 조선인 가운데 하나였다. 김씨는 누나가 자리잡고 있던 히로시마로 가서 누나의 조선 물품 가게에서 배달 일을 했다.

1945년 8월6일 아침, 김성현씨는 히로시마에 주둔하던 해군 감리공장 군사훈련장에 소집령을 받고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미사사혼마치의 소학교 훈련장이었다. 그날 평소와 같이 정찰을 위해 날아온 것이라 여겼던 미군의 B-29는 신형 무기 ‘리틀보이’를 히로시마 상공에 떨어뜨렸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8월 아침에 더해진 그 신형 무기의 빛은 그대로 그의 양팔과 등, 그리고 온몸에 화상과 중상을 입혔다. 연합군의 귀환정책에 따라 제대로 된 치료도 하지 못하고 해방된 조선으로 돌아온 것이 이듬해인 1946년 3월이었다. 형수와 조카 둘이 원폭으로 즉사해 돌아오지 못했고, 어머니는 귀환하던 해 남한 전역에 돌았던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2011년 8월30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조처를 취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제출한 심판 청구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문에서 “한일 협정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를 놓고 해석 차이가 존재하므로 협정 절차에 따른 외교적 경로로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도 국가가 이를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이 그 처지를 호소하며 피해 보상을 요구한 지 46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그들의 국가는 “헌법적 요청에 따른 (국가의) 의무”를 언급한 것이다.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히로시마를 처음 방문한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국이 떨어뜨린 원폭으로 숨진 민간인들을 애도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조선인 수천명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40년에는 이미 4만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히로시마에 거주하고 있었다. 원폭에도 살아남은 2만여명의 조선인 중 5천여명이 히로시마에 남고, 1만여명이 해방된 조선으로 돌아왔다.

히로시마에 남지도,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나머지 조선인 수만명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 수만명의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은 “원폭으로 해방을 맞은” 한국에서도, “세계 유일의 피폭국” 일본에서도, “조금 더 일찍 전쟁을 끝냄으로써 더 큰 희생을 막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미국 그 어디에서도 기억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히로시마를 해방과 독립으로만 기억하는 한국에서도 원폭은 일본의 ‘원죄’에 대한 당연한 귀결로만 여겨진다. 민족과 국가라는 경계를 따라 그려지는 피해와 가해의 구도 속에서 비난의 대상은 언제나 일본 정부일 뿐, 자국이 방기했던 ‘국가의 의무’를 상기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히로시마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목소리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피식민 조선인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이들을 잊었다. 잊힌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잊힌 그 영혼들을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지 73년째 되는 해다. 그리고 한 달 남짓 후면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쪽에 자리잡은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 앞에서 작은 기념식이 열릴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조선인의 영령들을 위로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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