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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27 18:26 수정 : 2018.06.27 19:43

박태원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상임대표·연평도 어촌계장

연평도 참조기인 석수어(石首魚)는 ‘꾸~욱’ 하는 큰 울음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교신한다. 이 신호로 매년 4월 초 정확히 산란장인 연평 군도에 나타난다. 번성기 시절 연평 바다에는 황해도, 충청도, 전라도, 일본, 대만 등 도처의 배들이 모여 큰 조기 파시를 만들었다.

이 파시(바다에서 여는 어시장)는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한동안 이어졌다. 육지의 휴전선과 달리 보이지 않는 바다의 경계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해도가 고향인 남북 어민들은 서로의 만선을 기원하며 조기를 잡았다. 바다 위에서 친척이라도 만나면 안부도 묻고 쌀을 주기도 했다.

그 바다에 남북 어민들 모두 들어가지 못한 지가 50여년이 흘렀다. 5·16 쿠데타 이후 남과 북의 해상 경계가 강화되고 군사적 갈등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중국 어선이 차지했다. 그리고 예로부터 백성의 물고기라 불리던 참조기는 밥상 위에서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으로 그 옛날 조기 파시의 이야기는 더욱더 퍼지고 어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도 지난 5년간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생존과 평화를 위한 운동을 전개했다. 2014년 해상시위를 시작으로 중국 어선 직접나포, 서해 북방한계선(NLL) 영해 헌법소원, 바다 위 개성공단 해상 파시, 최초로 연평도에서 여의도 간 어선 뱃길 잇기, 서해5도 한반도기 공표 및 어선 게양, 서해5도 평화수역 운동본부 전환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해5도에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해양수산부 등 4개 부처 장관들이 방문하여 어민 대표들과 의견을 나눴다. 이후 정부 실무자들과 어업권 규제 완화, 이동권 보장, 연평도 신항 조기 시행,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 재수립, 서해5도 평화에너지클러스터 조성, 옹진반도 남북 어민 민간교류, 엔엘엘 해상 파시, 모래채취 반대 등 5대 12개 과제에 대한 비공개회의도 했다.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가끔 군부대 부식 운송을 위해 우도에 갈 때가 있다. 맑은 날이면 북한 강령반도 앞에 있는 장재도, 대수압도, 용매도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강령반도는 연평도에서 어선으로 1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다. 강령군 어부도 나처럼 조기 파시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거다. 최근에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기가 가끔 잡히는데 거기도 잡히는지도 궁금하다.

연평도에서 어부로 살면서 깨달은 건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것이다. 아무리 양식 물고기가 맛있어도 활어의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 사이도 그렇다. 이웃과 금방 친해지려고 노력한다고 금세 친해질 수 없다. 자주 만나 진심을 나눠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가까워질 수 있다. 신뢰 없는 친한 척은 언제든지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

서해평화수역도 시간이 필요하다. 거쳐야 할 과정도 많고 동의를 얻어야 할 나라도 있다. 조기 파시의 영광을 꿈꾸며 50년을 기다린 어부도 있는데, 남북이 친해지기 위해 몇 년을 못 기다리겠는가.

한반도 서해를 누비는 연평도 석수어 무리는 오랜 기간 울음소리로 신호를 서로 보내며 서식지와 산란장으로 이동한다. 이제 평화수역이라는 공동의 목적지가 생겼을 뿐이다. 고향 바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민들이 정부에 울음소리를 보냈다. 정부도 서해5도 어민뿐 아니라 남북 간에도 신뢰의 신호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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