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우리가 한반도의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영토(간도) 문제보다는 고구려사 왜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출범이 난항을 겪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대일 신독트린을 실현하기 위한 상설 전담기구의 설치가 국회에서의 무의미한 논쟁 때문에 좌초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정부가 내세운 동북아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은 시작도 못하고 있으며, 재단 출범을 위해 세운 한시적인 바른역사정립기획단도 발전적 해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동북아 역사재단 법안이 건설적으로 논의되지 못하는 이유는 재단의 소관 부처 결정에 대한 정부 부처 사이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외교부 산하에 재단을 두는 것에 교육부가 반대하고 일부 여당 의원이 그에 동조하면서 대다수 의원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행정도시특별법이나 쌀 관세화 비준동의와 같이 부득이하게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의원들이 우유부단하게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친 정책기구 설립에 대하여 절차적 합의를 미루는 처사는 납득할 수가 없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설립 목적은 단순한 역사 연구가 아니라, 주변국의 역사 왜곡과 영유권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전략 및 정책대안 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곧 학계와 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부처 간의 업무 중복을 어느 정도 조정함으로써 국익에 합치하는 정책 수립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런 문제들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손해를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간도문제를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거론한 것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자극하여 동북공정의 강화를 초래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간도문제 제기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의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영토문제보다는 고구려사 왜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중국은 간도에 대한 영유권이 도전받으면 남한 주도의 통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영유권과 무관한 한-일 어업협정에 대한 반대로 오히려 독도의 분쟁적 성격이 부각되기도 했다. 일본이 바라던 바를 우리가 자초한 셈이다. 현재 중·일 양국은 그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은 변강사지연구중심이나 아주태평양연구소와 같은 국책 연구기관이 수립한 동북아 전략을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일본도 국제문제연구소가 외무성의 외교안보 정책 수립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주권 및 자원개발 문제를 다룬 ‘해양사업 발전계획요강’이나 일본의 영토전략의 근간이 되는 ‘영토문제 해결보고서’는 양국 정부의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댜오위타이(센카쿠열도)나 남부쿠릴열도(북방 4개 도서) 영토분쟁에 대한 중·일 양국 정책의 이면에는 그런 보고서의 존재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그런 기관을 통하여 국가적 차원에서의 일관된 정책·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역사재단이 출범한다면,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이나 시정, 국제 표기·명칭 문제, 일제강점기 피해자 지원, 독도 영유권의 공고화 등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도 적지 않다. 궁극적으로 이 재단은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와 같은 두뇌집단 구실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이창위/대전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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