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반론 -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의 ‘비정규직 입법 올안에 이뤄져야’ 를 읽고
사용사유를 제한하여 임시적이거나 일시적인 업무에만 임시직을 사용하도록 하고, 계속 유지되는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사용하도록 입법화해야 비정규직이 억제된다. 국회 심의를 앞두고 한국노총이 발표한 비정규직 법안 수정안(이하 ‘한국노총안’)은 현재 비정규 문제의 핵심 쟁점들에서 모두 후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히 후퇴한 것이 아니라 원칙이 무너진 것이 문제다. 첫째, 사유제한 없이 2년까지 임시직(기간제) 노동자 사용을 자유롭게 허용한 것이 가장 심각하다. 이대로 된다면 사용자들은 2년 이내에는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이 해지되어 다른 임시직으로 대체되고 불가피한 소수의 인력만 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기존 정규직 일자리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고, 신규 인력은 2년 이내 비정규직 중심으로 채용되어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05년 8월 현재 기간제(임시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8년이고, 근속연수가 2년 미만인 기간제 노동자가 73.9%에 이르고 있다. 2년 되기 전에 대부분 해고되고, 2년 넘어 정규직화될 수 있는 노동자는 소수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미 지금 시행되는 파견제에서도 증명되었다. 현행 파견법에는 ‘2년 초과 고용 시 직접고용 간주’ 조항이 있으나, 그동안 2년을 초과하여 직접고용된 노동자는 15.2%(노동부 통계)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다수는 2년마다 해고되는 파견노동자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노총이 제시한 ‘기간제 2년 조항’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를 어떻게 개선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사용사유를 제한하여 임시적이거나 일시적인 업무에만 임시직을 사용하도록 하고, 계속 유지되는 상시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을 사용하도록 입법화해야 비정규직이 억제된다. 둘째,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불법파견 규제도 미흡하다. ‘한국노총안’은 정부안과 마찬가지로 불법 파견 때 고용 의무만을 부과하고 있다. 고용 의무란 것이 병역 의무나 납세의 의무처럼 지키지 않으면 징역형 등 중벌에 처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지키지 않더라도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되는 수준의 고용 의무안이 불법 파견 업체의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파견기간을 넘겨 파견노동자를 쓰거나, 허용된 파견 업종 이외에 쓰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쓰는 모든 불법 파견을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불법 파견을 한 경우 해당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 조항이 필수적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비정규직의 노동권 보장에 둔감한 것도 ‘한국노총안’이 가진 문제점이다. 열약한 상태의 비정규직에게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 노동권이란 것은 특히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초보적 노력을 해본 노동자라면 바로 절감하는 상식이다.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고, 사용자의 불성실 교섭으로 진전이 없을 때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있는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이 무력화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파견노동자의 노동권 개선을 위해서 파견 등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원청 사용자가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져서 교섭에도 나오고 그를 상대로 쟁의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으니, 하청업체하고 교섭하라”는 발뺌이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노총안’에는 이러한 원청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조항이 아예 빠져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 관련 사항도 노사협상을 통한 내년 상반기 중 입법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이행 담보가 없어 사실상 권리 보장을 유보하고 있다. 시행 시기도 지나치게 늦다. 특히 차별금지 관련 조항을 2007년 1월1일부터로 1년이나 유예하고 있고, 기간제법은 7월1일로 6개월간 유예하고 있다. 비정규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비정규 관련 법안은 통과 즉시 시행되어야 한다. 비정규 관련 입법안을 평가하는 잣대는 정부안을 일부 수정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현재 비정규 문제를 진전된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의 포기와 불법파견 고용의제 포기 등 비정규직 사용과 확산을 인정하고 노동권 보장의 감수성을 잃은 것, 이것이 우리가 한국노총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다. 주진우/민주노총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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