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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1 18:09 수정 : 2018.06.11 19:30

염형철
물개혁포럼 공동대표

지난 90년 동안 수도권에서 발생한 가장 큰 홍수는 1990년 9월에 있었다. 사망자 163명, 이재민 18만7265명, 피해액은 5203억원이나 됐는데, 9월9일부터 12일까지 내린 500㎜ 전후 강수량에 고양시 일산의 제방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한강대교의 수위도 11.27m까지 올라 심각 단계인 13.3m를 턱밑까지 위협했는데, 일산제가 터지지 않았다면 한강이 넘쳐 서울을 뒤덮었을지도 모른다.

피해가 컸던 것은 한강 중하류에 강우가 집중된 때문이다. 한강권의 홍수조절 기능은 소양강댐과 충주댐 두 개에 한정되어 있는데, 이들은 서울로부터 135㎞와 150㎞나 떨어진 상류에 위치할뿐더러, 포괄하는 면적이 한강권의 35%에 불과하다. 그러니 한강 중하류에 비가 쏟아지자 속수무책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것 외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1990년의 대홍수는 국가 물 정책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민망했는지 일부 전문가들은 일산제 붕괴는 국가 차원의 위기대응 시나리오였을 거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28년이 지난 지금, 고양시 일산 침수지역은 모두 도시가 됐고, 한강 건너편인 김포평야에도 도시가 들어섰다.

만약 1990년의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면, 더 이상 그때의 요행을 누릴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이제껏 한강 중하류에는 1500만톤 규모의 여주홍수조절지 하나 만든 것이 전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이 서울을 ‘도시위험지수’ 3위로 올린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2017년).

지난해 8월, 감사원이 낸 팔당댐 감사 결과도 걱정을 키운다. 팔당댐은 200년에 한번 오는 큰 홍수(3만7000㎥/초)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됐으나, 실제로 그런 홍수가 오면 댐 수문으로 방류할 수 있는 양은 2만8500㎥/초(계획 대비 77%)에 불과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팔당댐을 넘쳐흐른 물이 댐을 전복시킬 수 있으니, 수문을 늘리거나 비상 방류구를 설치하라고도 권고했다. 그런데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이 대책이 추진되더라도, 이는 팔당댐 붕괴를 막는 대책이지 서울로 들어오는 홍수량을 줄이는 계획이 아니다. 그렇다고 고양시 일산을 다시 들판으로 되돌릴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보면 검토할 만한 방안이 있는데, 바로 팔당댐이다. 팔당댐은 전력생산 목적의 댐이라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고 있으며, 위치 에너지를 크게 유지하기 위해 팔당호 수위를 해발 25m로 가장 높게 유지하고 있다. 팔당호 수위는 그대로 둔 채, 상류에서 흘러드는 수량만큼 하류로 방류하는 구조라 홍수조절이나 용수저장 기능은 전혀 없다. 따라서 팔당댐의 목적에 홍수조절 기능을 추가하면, 홍수기 전에 수위를 낮추고 큰 홍수 때 저수해 수도권 대홍수 대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

팔당호는 물로 채워진 면적이 36.5㎢나 되고 저수량도 2.45억㎥나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팔당호가 있는 경기도 광주시의 수돗물 취수탑(높이 24.5m)을 조금 고치면, 약 5천만㎥의 홍수 조절 효과를 확보할 수 있다. 만약 23.5m 높이에서 취수하는 팔당 제1, 제3 취수탑까지 조정한다면, 홍수 조절량은 더 늘어난다.

수자원공사에 문의하니, 팔당댐의 다목적 이용에 적극 찬성한단다.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수위를 낮추면 전력생산이 줄어들지만, 홍수기 전에 방류하면서 대부분을 회수할 수 있으니 문제없다고 한다. 더욱이 홍수기에 저류할 수 없었던 무효 방류량을 줄인다면 이익을 더 키울 수도 있다고 한다.

벌써 6월이다. 홍수기가 멀지 않았다.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위기가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실효성이 의문인 거대 시설들만 고민할 게 아니라, 서울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하자. 큰 예산이나 신규 사업 결정 필요가 없는 팔당댐 수위 저감 방안을 검토해보자. 더구나 팔당호의 수위를 낮추면 주변 오염원들과 완충지대를 만들어 상수원을 보호할 수 있고, 하류 구간인 서울 한강의 이용을 늘리고 복원을 추진하는 데도 여유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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