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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6 17:50 수정 : 2018.06.08 17:19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객원교수

‘동북아균형자론’이 있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것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동북아의 안정과 국익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실패했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균형자의 조건은 힘과 지리적 근접성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근접성의 의미는 줄었지만, 힘은 여전히 중요하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말하기엔 우리의 힘이 너무 왜소했다. 1815년 빈(비엔나) 회의 이후 유럽이 10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한 것은 힘과 근접성을 활용한 영국의 유럽대륙을 향한 균형외교에 힘입은 바 컸다.

이제 ‘중재자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 중재자의 조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힘과 외교력이 중요하다. 1960년대 초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 심화되었을 때 김일성이 중재자 역할을 하려 했다. 하지만 두 강국이 주목하지 않아 효과는 못 거두었다. 역시 힘이 없었고, 경제 재건에 힘을 쏟느라 외교력을 증대할 수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능력은 북-미 정상회담 회복으로 우선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산 넘어 산이다. 핵 폐기와 그에 대한 보상의 과정은 곳곳이 지뢰다. 문 대통령의 중재력은 이제부터 더욱 필요하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역시 힘이다. 미국만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당장 갖출 순 없다. 그래서 이슈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에겐 사활적 이익이고, 우리가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더 연구하고, 더 많은 정보와 정책 아이디어, 접근 방안을 확보하면 된다. 둘째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김영삼 정부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한반도 위기 당시 북-미 사이에서 미국이 협상하려 하면 ‘이용당한다’ 하고, 강경정책을 쓰려 하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 했다. 그래서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로부터 ‘awful’(지독한·끔찍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협상의 부침 과정에서 북한이 다시 강하게 나오고, 미국과 보수세력이 몽둥이를 들라고 압박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수미일관의 모습으로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신뢰는 더 높아질 것이다.

셋째는 협의 규범(Consultation Norms)의 마련이다. 미국도 북한도 한국 정부와 상의하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최고위층에서 아래쪽 관료까지 다채널의 대화망을 구성해놓아야 한다. 자주, 깊이 만나야 한다. 미국도 북한도 한국을 통하지 않으면 상대 쪽으로 가기 어렵고 불안하도록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넷째는 초국가적 연대의 형성이다. 한국 정부와 미국의 시민과 학자, 언론 사이의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한국의 민간과 미국 정부 사이의 대화 기회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들 사이의 연대의식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다른 길을 가려 할 때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시민세력이 저지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5월27일치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까지 쓰면서 북·미가 다시 대화하게 된 것은 문 대통령 덕분이라고 했다. 물론 보수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문 대통령을 칭송하자고 나선 것은 아니다. 북한을 놓고 한·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 북-미 회담 복원 자체는 문 대통령의 공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중재능력에 세계 언론도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징표로 보인다. 특히 이 신문이 주시한 것은 문 대통령의 집요함(persistence)이다. 그 집요함에 전략적 접근이 합쳐져 앞으로 더 많은 중재효과를 만들어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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