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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04 18:32 수정 : 2018.06.04 19:13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

나라다운 나라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한반도 평화처럼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룬 분야도 있지만 큰 변화를 기대했는데 과연 달라진 게 뭐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분야도 있다. 과학기술계가 그중 하나이다.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계에 던진 메시지는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취급하며 단기적 성과 위주로 지원한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이 국가의 과학 경쟁력을 퇴보시키고 있음을 적시하면서, 과학기술 본연의 가치 추구를 위한 기초연구를 중시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녹색성장이다, 창조경제다 하는 경제정책 구호에 따라 연구개발비 투자가 널뛰기를 하며 연구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걸 보는 데에 넌더리가 난 연구자들은 과학기술 정책의 대전환을 기대하며 박수를 보냈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통한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이 새 정부 과학정책의 주요 내용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런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새 정부 기초연구 지원 정책의 골자는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을 2022년까지 2배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하므로 해마다 일정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국회에서 예기치 않게 예산이 삭감돼 과연 계획대로 실현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내년도 예산 작업이 한창인 현재, 정부 내에서조차 기획재정부가 기초연구사업 확대에 회의적이어서 예산 편성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부의 정책 실행 의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릴 상황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연구비 전체의 관점에서 기초연구 강화와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을 연결시키는 큰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각 부처가 국책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10조원에 이른다. 그러니 연구개발의 성공 여부는 국책사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책사업은 부처 간의 과다 경쟁으로 인한 중복투자, 비효율, 과제의 기획과 선정을 둘러싼 불공정성까지 많은 문제가 지적되었다. 게다가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단기적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세운 기술개발 사업이 앞다투어 만들어지며 부처별 사업은 기술개발 사업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마저 생겨났다. 이런 관행을 깨뜨리고 국책사업에서도 기초연구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과학기술 미래역량 확충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과학정책에 국책사업의 혁신에 대한 구체적 방향과 실행 계획은 나와 있지 않다. 부처별로 난립한 연구관리기관을 연구 목적에 맞게 기능별로 통합한다는 계획은 있지만, 부처들의 반발로 실행이 쉽지 않을 거란 얘기만 들린다. 그러는 사이 실제 현장에서는 수많은 기술개발 사업이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계속 기획되고 있으니 정부가 바뀌었지만 달라진 게 뭐냐는 실망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연구자들이 다른 일에 신경 안 쓰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러려면 연구자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며 정책 실행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초연구사업을 2022년까지 2조5천억원으로 확대하는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국책사업의 혁신 방안도 더 늦지 않게 나와야 한다. 바로 시행할 수 있고 연구자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책사업에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연구력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자유공모형 사업 시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번 정부가 기초연구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대전환을 이루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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