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태양광발전기로 밝히는 새로운 남북협력 / 이영란 |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저는 재생에너지 교육과 태양광발전 설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개발협력 활동가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라오스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세계 최빈국입니다. 그러나 현장까지 가는 길은 늘 멀고 험합니다. 수도에서 교육훈련이 이루어지는 읍내까지 8시간, 실제 태양광발전기 설치 작업이 이루어지는 산골 마을들까지는 짧으면 2시간, 길면 8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산악용 차량으로도 닿을 수 없는 마을들은 조각배로, 경운기로, 도보로 설비들을 이고 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라오스의 우기에는 어떻게도 닿을 수 없습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습니다. 국제기자단이 촬영한 북한 비핵화 조치의 첫걸음은, 원산에서 시속 40㎞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특별열차로 12시간, 차량으로 40분, 거기에서 또 산을 넘어 도착하는 것이었습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1006달러 미만의 최빈국인 라오스는 전기를 수출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외국 자본들은 라오스에 들어와 곳곳에 대규모 댐과 화력발전소를 짓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주변 나라에 팝니다. 그런데 강제이주와 환경적 부담은 고스란히 떠안은 주민들은 그 전기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라오스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나라의 중앙에서 송전해오는 불안정한 전기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빈곤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은 1인당 국민총소득 1006달러 미만의 기타 저소득국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조를 받을 수 있는 나라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2016년 북한의 발전 설비 용량은 고작 한국의 7.2% 수준이고, 총발전량은 더욱 열악해 4.4%에 불과합니다. 당장 북한은 전력을 경제건설의 긴급한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재생에네르기(에너지)법’을 시작으로 매년 신년사를 통해 에너지 절약과 자연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을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수교하고 대규모 자본 투자가 들어오기 전에 한반도 주민들은 함께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북한은 다양한 차원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공유하는, 통역이 필요 없는 남한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남한은 높은 수준의 태양광과 풍력발전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양광을 비롯해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 산업 분야 기업들은 물론이고, 환경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민들의 생활협동조합, 햇빛발전협동조합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역도 ‘원전 하나 줄이기’, 에너지자립마을, 지역에너지계획 수립 등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가고 있습니다. 새 정부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채택해 2030년까지 발전량의 20%를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최근 방송에서, 판문점 선언 다음날 평소엔 안 들어오던 전기가 ‘2시간이나’ 들어왔다고 전하는 북한 주민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덕분에 30분짜리 정상회담 다큐를 보고 사람들이 모두 통일된다고 생각하고 한 끼 맛있는 거 먹었다며 북한의 명절 같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끝에 이를 취재한 <아시아프레스> 대표는 특히 이들이 이제 남한이 도와줄 것이라고 많이 말한다며 주민들의 부푼 기대감을 덧붙였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석탄의 부담을 줄일 태양광발전기들이 따뜻하게 북한 주민들의 집을 밝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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