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연구소 소장·상지대 초빙교수 2008년 5월2일이었다. 시중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온갖 부당한 정책을 강행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안전 문제와 관련된 광우병 위험 우려가 있는 미국 쇠고기를 30개월 이상까지 ‘묻지마 수입’하려는 실로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걱정하고 우려했지만, 정권 초기라서 시민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그때, 많은 누리꾼(네티즌)들과 중고생들이 먼저 나섰다. 온라인 곳곳에서 시민행동을 너나 할 것 없이 집단지성으로 제안하고 토의하던 그 흐름은, 5월2일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서울 청계광장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깃발도 없었고 리더도 없어 보였다. 지극한 평화로움 속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항의가 넘쳐나던 그날을, 필자는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10월29일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그 뜨거웠던 촛불의 배경이자 원조가 2008년 5월2일 청계광장 촛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008년 촛불항쟁은 향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범국민적 참여로 이어졌고 8월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뒤로 갈수록 참여자들의 수는 줄어들고,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집행부들이 거의 전원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고통도 겪었지만, 이명박 정권에 국민 위에 군림해 잘못된 정책을 함부로 자행하게 되면 ‘큰일 난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져주었다. 그렇게 우리 국민은 대규모 항쟁의 역사와 경험을 또 하나 쌓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지난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까지 이끌어낸 도도한 항쟁의 역사에서 2008년 촛불항쟁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먼저, 평범한 국민들이 주도하는 촛불집회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회운동 진영도 최선을 다해 참여했지만, 역시 압권은 당시 중·고등학생들과 깨어 있는 네티즌들, 그리고 평범한 주권자들의 참여였다고 할 것이다. 비록 정권 초기였고, 이슈가 건강 문제로 국한되었고, 당시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했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그 성과도 작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30개월 이상의 특정위험물질까지 포함된 미국 쇠고기를 무조건 수입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 항쟁으로 지금까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한 30개월 미만의 미 쇠고기만 수입되고 있고, 수입검역체계도 비교적 강화되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의료 민영화 및 경쟁 위주 교육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최근 <조선일보> 등 극우매체·극우단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호주를 제치고 1위가 되었고, 2008년 촛불집회는 괴담에 의한 것이었다며 2008년 촛불항쟁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은 실제로 당시에도 발병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2008년엔 일본만 해도 2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만 수입할 정도로 엄격한 수입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무모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맞서 투쟁을 전개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 쇠고기 수입조건과 검역체계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당시 이명박 정권의 대미 협상 담당자들도 인정한 성과였는데, 그걸 괴담에 의한 비이성적 행동이라고 자국민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려서야 되겠는가.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수입 및 검역 조건과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촛불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나고 최근 광우병 발병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만을 근거로 2008년 촛불집회와 수백만 촛불국민들을 폄훼하고 음해하는 시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긴 역사로 보면, 2008년 촛불항쟁은 ‘이명박·박근혜 반국민 정권의 9년 암흑기’에 맞선 1차 촛불혁명의 발발이었고, 2016년 2차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역사적 발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8년 촛불부터 2018년 3월 이명박 구속 때까지를 10년 촛불시민혁명의 시기로 규정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촛불항쟁에 참여했던 수백만 촛불국민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
왜냐면 |
[왜냐면] 10년 된 2008년 촛불, 벌써 잊으신 건 아니죠? / 안진걸 |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상지대 초빙교수 2008년 5월2일이었다. 시중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온갖 부당한 정책을 강행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안전 문제와 관련된 광우병 위험 우려가 있는 미국 쇠고기를 30개월 이상까지 ‘묻지마 수입’하려는 실로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걱정하고 우려했지만, 정권 초기라서 시민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그때, 많은 누리꾼(네티즌)들과 중고생들이 먼저 나섰다. 온라인 곳곳에서 시민행동을 너나 할 것 없이 집단지성으로 제안하고 토의하던 그 흐름은, 5월2일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서울 청계광장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깃발도 없었고 리더도 없어 보였다. 지극한 평화로움 속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항의가 넘쳐나던 그날을, 필자는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10월29일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그 뜨거웠던 촛불의 배경이자 원조가 2008년 5월2일 청계광장 촛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008년 촛불항쟁은 향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범국민적 참여로 이어졌고 8월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뒤로 갈수록 참여자들의 수는 줄어들고,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집행부들이 거의 전원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고통도 겪었지만, 이명박 정권에 국민 위에 군림해 잘못된 정책을 함부로 자행하게 되면 ‘큰일 난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져주었다. 그렇게 우리 국민은 대규모 항쟁의 역사와 경험을 또 하나 쌓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지난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까지 이끌어낸 도도한 항쟁의 역사에서 2008년 촛불항쟁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먼저, 평범한 국민들이 주도하는 촛불집회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회운동 진영도 최선을 다해 참여했지만, 역시 압권은 당시 중·고등학생들과 깨어 있는 네티즌들, 그리고 평범한 주권자들의 참여였다고 할 것이다. 비록 정권 초기였고, 이슈가 건강 문제로 국한되었고, 당시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했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그 성과도 작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30개월 이상의 특정위험물질까지 포함된 미국 쇠고기를 무조건 수입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 항쟁으로 지금까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한 30개월 미만의 미 쇠고기만 수입되고 있고, 수입검역체계도 비교적 강화되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의료 민영화 및 경쟁 위주 교육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최근 <조선일보> 등 극우매체·극우단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호주를 제치고 1위가 되었고, 2008년 촛불집회는 괴담에 의한 것이었다며 2008년 촛불항쟁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은 실제로 당시에도 발병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2008년엔 일본만 해도 2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만 수입할 정도로 엄격한 수입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무모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맞서 투쟁을 전개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 쇠고기 수입조건과 검역체계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당시 이명박 정권의 대미 협상 담당자들도 인정한 성과였는데, 그걸 괴담에 의한 비이성적 행동이라고 자국민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려서야 되겠는가.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수입 및 검역 조건과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촛불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나고 최근 광우병 발병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만을 근거로 2008년 촛불집회와 수백만 촛불국민들을 폄훼하고 음해하는 시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긴 역사로 보면, 2008년 촛불항쟁은 ‘이명박·박근혜 반국민 정권의 9년 암흑기’에 맞선 1차 촛불혁명의 발발이었고, 2016년 2차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역사적 발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8년 촛불부터 2018년 3월 이명박 구속 때까지를 10년 촛불시민혁명의 시기로 규정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촛불항쟁에 참여했던 수백만 촛불국민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상지대 초빙교수 2008년 5월2일이었다. 시중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온갖 부당한 정책을 강행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안전 문제와 관련된 광우병 위험 우려가 있는 미국 쇠고기를 30개월 이상까지 ‘묻지마 수입’하려는 실로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걱정하고 우려했지만, 정권 초기라서 시민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그때, 많은 누리꾼(네티즌)들과 중고생들이 먼저 나섰다. 온라인 곳곳에서 시민행동을 너나 할 것 없이 집단지성으로 제안하고 토의하던 그 흐름은, 5월2일 그동안 한국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서울 청계광장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깃발도 없었고 리더도 없어 보였다. 지극한 평화로움 속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항의가 넘쳐나던 그날을, 필자는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16년 10월29일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그 뜨거웠던 촛불의 배경이자 원조가 2008년 5월2일 청계광장 촛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2008년 촛불항쟁은 향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범국민적 참여로 이어졌고 8월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뒤로 갈수록 참여자들의 수는 줄어들고,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집행부들이 거의 전원 구속되거나 수배되는 고통도 겪었지만, 이명박 정권에 국민 위에 군림해 잘못된 정책을 함부로 자행하게 되면 ‘큰일 난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져주었다. 그렇게 우리 국민은 대규모 항쟁의 역사와 경험을 또 하나 쌓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몰아내고, 지난 3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까지 이끌어낸 도도한 항쟁의 역사에서 2008년 촛불항쟁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먼저, 평범한 국민들이 주도하는 촛불집회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회운동 진영도 최선을 다해 참여했지만, 역시 압권은 당시 중·고등학생들과 깨어 있는 네티즌들, 그리고 평범한 주권자들의 참여였다고 할 것이다. 비록 정권 초기였고, 이슈가 건강 문제로 국한되었고, 당시 정치적 전망이 불투명했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었지만 그 성과도 작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30개월 이상의 특정위험물질까지 포함된 미국 쇠고기를 무조건 수입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 항쟁으로 지금까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특정위험물질을 제외한 30개월 미만의 미 쇠고기만 수입되고 있고, 수입검역체계도 비교적 강화되었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의료 민영화 및 경쟁 위주 교육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최근 <조선일보> 등 극우매체·극우단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호주를 제치고 1위가 되었고, 2008년 촛불집회는 괴담에 의한 것이었다며 2008년 촛불항쟁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광우병은 실제로 당시에도 발병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2008년엔 일본만 해도 20개월 미만 미국 쇠고기만 수입할 정도로 엄격한 수입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권의 무모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맞서 투쟁을 전개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 쇠고기 수입조건과 검역체계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당시 이명박 정권의 대미 협상 담당자들도 인정한 성과였는데, 그걸 괴담에 의한 비이성적 행동이라고 자국민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려서야 되겠는가. 상대적으로 안전해진 수입 및 검역 조건과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촛불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늘어나고 최근 광우병 발병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만을 근거로 2008년 촛불집회와 수백만 촛불국민들을 폄훼하고 음해하는 시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긴 역사로 보면, 2008년 촛불항쟁은 ‘이명박·박근혜 반국민 정권의 9년 암흑기’에 맞선 1차 촛불혁명의 발발이었고, 2016년 2차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역사적 발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08년 촛불부터 2018년 3월 이명박 구속 때까지를 10년 촛불시민혁명의 시기로 규정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촛불항쟁에 참여했던 수백만 촛불국민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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