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1 18:06
수정 : 2005.12.01 18:06
왜냐면
피디수첩은 역사적 사생아들의 허영심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박정희 이래로 개발독재의 오랜 과정을 통해 뿌리도 줄기도 아름드리로 자라버린 성장제일주의, 국가주의, 돈 만능주의에 겁도 없이 피디수첩이 도전장을 낸 것이다. 이제 새로운 촛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문화방송사 앞에서 촛불을 들고 밤 집회를 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사장의 공개 사과와 〈피디수첩〉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피디수첩〉 보도의 진실성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고 〈피디수첩〉의 의도와 목적을 비난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또 〈피디수첩〉의 지엽적인 취재 과정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논란 수준의 과정을.
나는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촛불에 주목한다. 촛불의 상징이 이제 바뀐 것일까? 내가 그동안 촛불의 역사성을 잘못 읽었나? 되짚어본다. 촛불집회. 2002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선이·효순이 사건에서 대미 자주성과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상징하던 것이 촛불이었다. 이후로 촛불은 캄캄하고 억울한 밤을 밝혀야 할 때마다 켜졌다. 정치나 세태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할 때도 어김없이 촛불은 켜졌다. 대통령 탄핵이 있을 때도 그랬지만 관습헌법이 행정수도 이전을 가로막았을 때도 켜졌다. 어떤 이름 높은 시인은 이들을 ‘촛불 세대’ 혹은 ‘대~한민국 세대’라고 부르면서 1970~80년대의 ‘민주화 세대’와 동격에 놓으면서 애국적 자긍심이 높다고 칭찬하였다.
그래서 나는 〈피디수첩〉 앞에서 켜진 촛불에 당황한다. 진실도 정의도 역사성도 없기에 나는 어리둥절하다. 그들의 과학제일주의와 물신이 지배하는 돈벌이 의식, 또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목적 최우선주의가 내가 보아왔던 촛불에는 너무도 안 어울려서 그렇다.
그러나 당혹스러움을 다독이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곧 촛불들의 놀라운 일치를 발견하게 된다.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 거리를 메웠던 붉은 티셔츠와 치우천황이 그려진 깃발, 그리고 미선이·효순이 사건에 항의하여 광화문 거리를 찾았던 촛불 든 손들과 지금 문화방송 피디수첩 앞에서 촛불을 든 손들이 같은 손임을 발견한다. 툭하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미국 국기를 휘젓고 남북한 최고 지도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짓밟는 무리들과도 ‘촛불 든 손들’이 같은 부류임을 본다. 비틀거리며 전개되어 온 우리나라 현대사가 낳은 이복형제들이 아닌가 한다.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신돈〉을 보면서 견딜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가 있다.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장면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개항 이후 1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외세에 의한 강점. 전시 작전권도 없고 한 나라의 수도 한가운데에 110년 이상 외국 군대가 버티고 있는 나라. 미국 국기에 충성과 보은의 경례를 하면서 살아온 세대들. 군대위안부니 강제징용 보상이니 한센인 재판이니 하면서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는 궁상스런 사진들은 차라리 이들에게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일 뿐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황우석은 그냥 한 개인의 이름을 뛰어넘는다. 세계 경제력 11위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신화가 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다 점령하고 정보기술 강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민임에 자부심을 갖는다. 허영심과 교묘하게 뒤섞인 자부심이다. 일제 점령기를 떠올리거나 입에 담는 것조차 치욕스럽다는 사람들이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이들에게 ‘황우석’은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정서적 보상물이다. 신성불가침이다. 모처럼 ‘촛불 세대’와 조·중·동의 동맹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풍조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자유와 박애 그리고 평등을 내세우는 프랑스에서 지난달 벌어진 제3세계 젊은이들의 폭동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국익’을 위해 생체실험을 한 일제의 만행을 더는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국익’은 이미 ‘국손’이 됨을 알아야 한다.
〈피디수첩〉은 역사적 사생아들의 허영심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박정희 이래로 개발독재의 오랜 과정을 통해 뿌리도 줄기도 아름드리로 자라버린 성장제일주의, 국가주의, 돈 만능주의에 겁도 없이 〈피디수첩〉이 도전장을 낸 것이다. 이제 새로운 촛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촛불을 꺼야 한다.
전희식/농부·전북 완주군 소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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