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1 18:06
수정 : 2005.12.01 18:06
왜냐면
비정규 입법은 비정규 노동운동의 시작이다. 노동조합은 비정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하나의 디딤돌을 얻는 것이며 이를 계기로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현장활동을 벌여야 한다.
한국노총이 비정규 법안 최종안을 제시하고 이를 입법의 최후 방어선으로 삼을 것을 요구함으로써 작년에 제출된 비정규직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처럼 한국노총이 민주노총과의 공조가 깨질 수도 있다는 부담을 안고서까지 최종안을 던진 것은 최근의 상황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의 연내 입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첫째,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비정규 입법의 올해 안 관철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국회에서 노·사·정 간의 협상이 합의에 실패하면서 반년이 넘도록 노·사·정 및 정당, 시민단체 등 어느 주체도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과 입법을 위한 구체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입법을 반대하는 경영계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태도, 자신의 안만을 고집하는 정부, 원칙적인 주장에서 한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는 민주노총 등 비정규 법안 관련 당사자들 중 누구도 법 제정에 대하여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둘째, 비정규 보호법안의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요구를 제출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 단위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 과정에서 노동계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원칙적인 안만을 고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부나 사용자의 안으로 귀결되는 사례를 수없이 겪어 왔다. 더욱이 노동계는 그동안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했지만 애초 원안을 관철하는 것은 쉽지 않고 정부안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감안해야 했다.
셋째, 책임지는 노동운동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단위 사업장의 교섭과 달리 중앙 단위 교섭과 협상은 타협점을 찾는 실리적인 접근이 쉽지 않다. 산하 조직과 조직 구성원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합원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고민과 대안보다는 원칙 견지와 선명한 투쟁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적이고 타성적인 노동조합의 사업 방식을 깨고 적극적인 개입 전략을 통해 노동운동의 사업 방식을 바꿔내야 한다.
비정규 입법이 된다고 해서 비정규 노동자가 완벽하게 보호되고 차별이 한꺼번에 철폐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비정규 입법은 비정규 노동운동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은 비정규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하나의 디딤돌을 얻는 것이며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현장활동을 더욱 가열차게 벌여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철폐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김종각/한국노총 정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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