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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8 18:30 수정 : 2018.04.18 19:45

박현숙 한국장애인부모회 안양시지부장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말과 글의 성찬이 넘친다. 장애인의 날 38년의 역사부터 올해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0년인 의미까지 다양하다. 그러한 말과 글의 말미는 어김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아들이 성인이 된 후에 깨달았다. 우리의 현실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 취학을 앞두고 불면의 밤을 보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던 기억도 부지기수다. 그런 내가 여느 장애아 엄마들처럼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회에는 그렇게 장애와 비장애의 단단한 벽이 놓여 있다.

동병상련으로 엄마들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함께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뭉친 것이다. 이름은 세잎클로버, 행운의 네 잎에서 하나 모자라지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복의 작은 기적이 지금 경기도 의회 1층 한그루 카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국 의회 건물 최초로 사회적 약자가 운영하는 카페가 만들어져 입찰공고가 났을 때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비회기 기간에는 200여 직원들만 근무하는 곳에서 이런 카페가 수지타산이 맞을까 해서다. 우리가 입찰에 응모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말렸다. “투자금도 못 건질 것이다, 금세 망할 것이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두려웠지만 발달장애 자녀들에게 직업을 만들어준다는 설렘으로 우리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변에서 발달장애 친구 하나가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 취직해서 부러워했는데 6개월도 안 되어서 해고당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장애가 더 악화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 매니저와 아이가 한팀이 되도록 조직을 만들었고, 아이들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일주일에 2~3일만 근무하는 일정을 짰다. 아이들 월급은 한 달에 20만원 안팎이고, 엄마들은 무료봉사다. 누구에게는 매우 적은 월급이지만 아이들이 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의 행복은 점점 기대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특성은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그 표현이 과하다. 좋을 때는 의회 로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불편할 때는 카페 안에서도 혼잣말 같은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여느 상업지구에서 이런 바리스타들이 운영하는 카페라면 발길이 끊겼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의회다. 민의의 전당답게 아이들의 이런 특성을 의원들, 직원들이 차츰 이해하고 배려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마주하고 있다. 손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들이 인사를 건넨다. 신용카드를 받고 계산하는 모습도, 커피를 내리는 모습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초기엔 엄마들이 노심초사 옆에 붙어 있었는데 이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진정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며칠 전, 발달장애 자녀와 시골로 이사 가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사회와 단절이어서다. 아니 우리 사회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를 이곳 북카페 한그루에서 본다. 전국의 모든 의회 건물은 물론이고 청와대 안에도 이런 공간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함께 살면서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장애인이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않고 살아갈 희망을 느끼고 싶다. 말과 글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참모습을 보고 싶으면 경기도 의회를 보라! 여기에 장애인 정책의 답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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