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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6 18:45 수정 : 2018.04.16 19:02

허민선
서울 관악구 신림로11길

타의로 오게 된 타지, 제주에서였다. 버스 안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송곳처럼 괴성이 들렸다. 주위의 시선이 일시에 하차하는 곳으로 쏠렸다. 완전히 하차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문이 접히며 닫히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할머님 한 분이 틈에 끼었다. 문은 다시 주름이 펴지면서 열렸고, 할머님은 일말의 툴툴거림 없이 그대로 차분히 내리셨다. 근처에 앉았던 승객 두 명은 흠칫 놀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 앉았다.

다시, 창밖으로 정류장 의자에 앉아 계신 할머님의 인자한 미소가 보였다. 버스가 출발하려 하자, 옆좌석에 아이와 앉아 있던 여성이 기사님을 향해 괜찮은지 물어보셔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단호히 말했다. 기사님은 곧바로 차를 세우고 일어나 내린 뒤 할머님께로 다가갔다. 조금씩 조금씩 몸을 낮춰 상황을 이야기했다. 할머님은 시종 따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님과 차근차근 말씀을 주고받았다. 비로소 버스는 출발했고, 싸한 공기는 어느새 맑은 공기로 환기되었다.

고개를 돌려 단호했던 목소리가 들린, 그 곁에 앉은 꼬마를 바라보았다. 앞 좌석의 등받이를 꼭 잡느라 의자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꼬마가 엉덩이를 붙여 앉기에는 의자가 크고 멀었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버스에 몸을 맡긴 채,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버스 안이 잠수함처럼 느껴졌다. 여성의 그 한마디가 (잠수함에서 산소량의 지표가 되어주는 토끼처럼) 사이렌이 되어 나를 각성시켰다.

버스가 무턱대고 출발해버렸다면, 창밖 너머의 할머님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고의가 아닌 기기 작동 과정의 문제였더라도, 기사님께는 자책골을 넣게 된 축구선수의 심정 같은 게 지나가지 않았을까. 자책골을 넣은 선수가 극적인 만회골을 넣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행한 일이 아닐까. 이런 심정이었다. ‘기사님께 그 한마디를 해주셔서, 기사님은 그 한마디를 귀담아들어주셔서, 할머님은 그런 상황을 이해해주셔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무너진 대학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아 첫 유리조각을 주우면서 제 스스로 정한 규칙”으로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줍자”고 했다. 그 버스에서 내린 뒤로, 그 한마디가 주는 산소량이 유리조각을 줍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마디는 기사님을 위해서, 할머님을 위해서,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을 위해서 산소처럼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 때에 하는 것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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