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종암로36길 4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철없이 놀다가 세월호의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전원 구조라더라. 안심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용무가 있어 밖에 다녀왔다 본 뉴스에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향소에 갔다. 단원고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국화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랑 동갑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노는 동안 그 친구들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개를 들기 퍽 힘들었다. 일년이 지나고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 무렵이었다. 반 친구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단원고 특별전형”이었다.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생존자들을 비난하며, 의대에 입학한 단원고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니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봐야겠다, (생존자들은) 죽은 것도 아닌데 ‘꿀빨러’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반박은 했지만 그 아이들의 비이성적인 이야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건 범국가적인 적폐뿐이 아니었다. 사후처리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결핍된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위에서 생존자들을 희화화하고 시시덕대던 놈들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공감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순간, 그들은 파렴치한이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사고를 당한 건 안타깝지만 그건 개인들의 일 아니냐고. 어째서 전 사회가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여 희생자들을 지속적으로 추모하고, 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작금에 드러나고 있다시피, 세월호는 사회의 여러 병폐가 연쇄작용하여 나타난, 어찌 보면 예견된 사고였다. 아니 대부분의 사건이 많게든 적게든 사회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그런 관점에서 사회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어느 슬로건이 말하듯,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할 때,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후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여성혐오”라는 제목을 달고 난 뒤에는 달랐다. 고작 하나의 단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 대부분의 사건은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면,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그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다”라고 외치기 전에, 혹시 어떤 사회 문제와 사고가 연관된 것은 아닐지, 나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런 면에서 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건들을 보며 조금 더 반성적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 무지 혹은 무관심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렀던 폭력이 그런 사건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이런 반성이 내가, 아니 사건을 맞닥뜨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잊지 않겠습니다”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
[왜냐면] 잊지 않겠습니다 / 장찬 |
장찬
서울 성북구 종암로36길 4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철없이 놀다가 세월호의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전원 구조라더라. 안심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용무가 있어 밖에 다녀왔다 본 뉴스에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향소에 갔다. 단원고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국화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랑 동갑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노는 동안 그 친구들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개를 들기 퍽 힘들었다. 일년이 지나고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 무렵이었다. 반 친구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단원고 특별전형”이었다.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생존자들을 비난하며, 의대에 입학한 단원고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니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봐야겠다, (생존자들은) 죽은 것도 아닌데 ‘꿀빨러’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반박은 했지만 그 아이들의 비이성적인 이야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건 범국가적인 적폐뿐이 아니었다. 사후처리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결핍된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위에서 생존자들을 희화화하고 시시덕대던 놈들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공감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순간, 그들은 파렴치한이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사고를 당한 건 안타깝지만 그건 개인들의 일 아니냐고. 어째서 전 사회가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여 희생자들을 지속적으로 추모하고, 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작금에 드러나고 있다시피, 세월호는 사회의 여러 병폐가 연쇄작용하여 나타난, 어찌 보면 예견된 사고였다. 아니 대부분의 사건이 많게든 적게든 사회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그런 관점에서 사회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어느 슬로건이 말하듯,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할 때,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후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여성혐오”라는 제목을 달고 난 뒤에는 달랐다. 고작 하나의 단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 대부분의 사건은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면,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그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다”라고 외치기 전에, 혹시 어떤 사회 문제와 사고가 연관된 것은 아닐지, 나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런 면에서 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건들을 보며 조금 더 반성적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 무지 혹은 무관심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렀던 폭력이 그런 사건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이런 반성이 내가, 아니 사건을 맞닥뜨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잊지 않겠습니다”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 성북구 종암로36길 4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철없이 놀다가 세월호의 소식을 접했다. 처음엔 전원 구조라더라. 안심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용무가 있어 밖에 다녀왔다 본 뉴스에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향소에 갔다. 단원고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국화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랑 동갑인 사람들이었다. 내가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노는 동안 그 친구들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을 것이라 생각하니 고개를 들기 퍽 힘들었다. 일년이 지나고 대학에 원서를 넣을 때 무렵이었다. 반 친구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단원고 특별전형”이었다.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은 생존자들을 비난하며, 의대에 입학한 단원고 학생이 있을지도 모르니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봐야겠다, (생존자들은) 죽은 것도 아닌데 ‘꿀빨러’ 아니냐 등의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서 반박은 했지만 그 아이들의 비이성적인 이야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건 범국가적인 적폐뿐이 아니었다. 사후처리 과정에서, 공감 능력이 결핍된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론 위에서 생존자들을 희화화하고 시시덕대던 놈들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공감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순간, 그들은 파렴치한이 되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사고를 당한 건 안타깝지만 그건 개인들의 일 아니냐고. 어째서 전 사회가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여 희생자들을 지속적으로 추모하고, 그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도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작금에 드러나고 있다시피, 세월호는 사회의 여러 병폐가 연쇄작용하여 나타난, 어찌 보면 예견된 사고였다. 아니 대부분의 사건이 많게든 적게든 사회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그런 관점에서 사회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어느 슬로건이 말하듯,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할 때,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은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후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역시 대부분의 국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여성혐오”라는 제목을 달고 난 뒤에는 달랐다. 고작 하나의 단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 대부분의 사건은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면,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그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다”라고 외치기 전에, 혹시 어떤 사회 문제와 사고가 연관된 것은 아닐지, 나는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반성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런 면에서 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건들을 보며 조금 더 반성적으로, 지속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 무지 혹은 무관심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렀던 폭력이 그런 사건들을 만들어낸 것은 아닌지. 이런 반성이 내가, 아니 사건을 맞닥뜨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잊지 않겠습니다”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진심으로 추모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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