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정상회담 앞서 맞은 남북협상 70주년 / 김삼웅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4월27일로 예정된 가운데 1948년 4월19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56개 정당·사회단체 대표 회담이 열린 지 70주년을 맞는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남북협상의 의미와 좌절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단 후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던 남북협상이 좌절됨으로써 한반도는 냉전·열전·탈냉전·신냉전을 모두 겪은 세계 유일의 위험지대가 되었다. 그간 남북이 겪은 희생과 고통은 진행형이다.
35년 머슴살이 끝에 간신히 해방이 되었는데 열강은 먹잇감을 놓아주지 않았고, 여기 마름이라도 하려는 친일·분단주의자들이 설치고 나섰다. 동포가 갈라지고 국토가 양단되는 시기에 이를 막으려는 통일운동이나 협상론자가 없고, 반쪽 권력이나 잡겠다는 정상배들뿐이었다면 우리 역사는 보다 비참했을 것이다.
김구는 남북협상을 앞두고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밝혔고, 남북협상을 처음 제기한 김규식은 38선 푯말을 붙잡고 “이제 내가 짚고 있는 푯말을 뽑아버려야만 하겠소. 그러나 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고 온 겨레가 합심만 한다면 곧 뽑아버릴 수가 있을 줄 아오”라는 소회를 밝혔다.
당시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남북연석회의가 개최되었다. 단상에는 태극기가 게양되고, “동해물과”로 시작되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때까지 북한에서도 태극기와 애국가를 국기와 국가로 인정하였다. 연석회의는 세 분야로 나뉘어 열렸다.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 ‘남북조선 제정당 지도자협의회’,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의 4자회담이었다. 남북 56개 정당사회단체 대표 545명이 참석한 대표자연석회의가 4월27일까지 열린 데 이어 이날 저녁부터 30일까지 15인으로 구성된 남북요인회담이 열렸다. 대표자연석회의는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에 보내는 ‘연석회의 요청서’를 채택한 데 이어 ‘조선정치정세에 관한 결정서’를 통과시켜 남북에서 단독선거 실시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였다.
연석회의가 끝난 후 김두봉은 자택으로 김구·김규식·조소앙·조완구·홍명희 등을 초청하여 김일성과 합석한 자리에서 연석회의 결정서의 내용을 포함한 정치문제를 토의했으며, 김구·김규식·김일성·김두봉 4인이 토의를 계속했다. 이 자리에서 통일에 대한 남북 지도자의 공동성명, 통일을 위한 공동대책기관의 설립, 그리고 통일운동을 위한 조직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4월24일 김두봉의 집에서 다시 열린 4김회담에서 김구와 김규식은 연백수리조합 개방 문제와 송전 문제 그리고 조만식을 서울에 동행시켜줄 것, 중국 여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안중근 의사의 유해 봉환 등을 요청했다. 북한은 송전 계속을 약속했고 연백수리조합 개방 문제는 성사되었으나, 안 의사 유해 봉환은 여순이 소련군 관할 지역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로 귀환한 두 김씨는 방북 성과를 발표했다. “이 회의는 자주적·민주적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서 양조선의 단선·단정을 반대하며 미·소 양군의 철퇴를 요구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북조선 당국자도 단정을 절대로 수립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두 김씨는 연석회의 공식 문서인 외군철수 요청서를 미군정청에 전달하는 책임을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에게 맡겼다. 여운홍이 하지 미군 사령관을 만나 이 요청서를 전달하자, 하지는 이를 보지도 않고 ‘갓댐’ 하고 내팽개쳐버렸다고 한다.
남북협상은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민족의 영구분단을 눈앞에 두고 분단세력에게 국가의 운명을 내맡겨 둘 수는 없다고 하여 추진되었다. 남한에서는 미국이 분단정권 수립을 확정하였고, 북한에서도 소련이 지목한 김일성 체제가 굳어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남북협상은 타의에 의해 갈라졌던 부부의 재결합을 위한 힘겨운 만남이었으나, 송별연이 되고 말았다. 이때의 ‘송별연’이 한민족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판문점에서 만나는 남북 정상은 돌이키면서 회담에 임하기를 바란다. 마침 남북협상 관련 학술회의도 오는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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