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왜냐면]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대통령께 만남을 요청합니다 / 박경석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문재인 대통령님. 4월20일은 정부가 38년 전에 지정한 ‘장애인의 날’입니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여전히 시혜와 동정, 혐오의 대상으로 그 어디쯤에서 겨우 생존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정책 목표는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입니다.” 이는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인 지난해 이맘때 장애인들에게 한 약속입니다.
2018년 대한민국은 장애인들의 사회 통합과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분리되고 거부당하고 배제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지금도 좁은 방구석에 갇혀 가족의 부담으로, 수용시설에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겨우 생명만을 이어가면서 그 존재감도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하여, 4월20일을 16년째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 바꿔 부르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12년 8월21일부터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천막을 치고 살면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장애인거주시설 폐지를 외쳤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저희의 외침을 철저히 묵살했습니다. “나태한 수급자들을 매섭게 관리해야 한다”, “세금이 공돈이냐!”는 질책과 모욕으로 우리들의 존재를 짓눌러왔습니다.
5년이 지나 ‘봄이 온다’는 남쪽 예술단 평양공연의 주제처럼 봄이 왔고, 새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역 지하차도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관협의체 논의기구를 구성하면서 1842일의 농성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을이 왔다’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공연 제안처럼 우리는 대화를 통해 결실을 기대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일자리 문제는 대통령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까. 그런데 그 관심사에 중증장애인의 노동 문제는 포함돼 있는지요? 한국 중증장애인들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최저임금법 제7조)이 있어서 유엔(UN) 장애인위원회에서 시정을 권고받은 것은 아시는지요?
대통령님,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은 평화와 함께 평등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창에 가기조차 힘들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버스·고속버스는 한 대도 없고 시내버스조차 제대로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패럴림픽을 치르는 동안 전국 각지에서 임시로 가져온 저상버스,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였으나 패럴림픽은 끝나고 빌려온 차들은 다시 돌아갔으니,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강원도에, 평창에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2005년에 제정되었고, 사회적 약자들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권리를 보장했지만 벌써 13년이 지났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기다린 것 아닙니까?
법이 있고, 권리로 규정되고,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대화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산을 반영하는 문제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협의체에 참석한 공무원분들은 예산 확대를 요구하면 항상 ‘마음은 다 이해한다’면서도 기획재정부에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피해버립니다. 저희로서는 참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협의체 논의를 거듭할수록, 긴 시간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廢止)를 요구했던 저희의 외침이 이러한 예산이 없다는 완고한 입장 속에서 쓰다 버린 종이 신세처럼 폐지(廢紙)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 공무원들에게만 둘러싸여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본 이 사안들에 대한 의견과 평가들만 보고받고 계신 것이 아닌지 많이 우려스럽습니다. 그래서 꼭 만나서 우리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애인이 시혜와 동정 그리고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Disabled Persons)은 1975년 12월9일 유엔총회에서 선언되었습니다. 43년이 지났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제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란에 ‘문재인 대통령님,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만남을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 중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동의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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