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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2 18:47 수정 : 2018.04.02 19:01

고춘식
전 한성여중 교장·전국교육희망네트워크 상임대표

지난 3월22일 오전 11시, 나는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선거 연령을 낮추라는 청소년들의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했다. 이날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았던 듯하니, 부끄러움의 크기도 가장 컸으리라. 부끄러웠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지금껏 아이들 앞에서 떳떳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청소년들의 외침 하나하나가 송곳이 되어 꽂히니 진땀이 날 정도로 부끄러웠다.

청소년들의 발언 제목을 보자.

‘참정권, 생존의 문제다!’ ‘선거 연령 하향, 나중이 아닌 지금이어야 하는 이유’ ‘무시해도 되는 외침을 끝내자!’

기자회견 자료에 나와 있는 말들을 보자.

‘청소년은 사회적 약자, 청소년은 투명인간, 정치적 권한 제한,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있는 청소년들, 절박한 외침, 배제되는 청소년들, 커지는 권력 차이, 연령차별의 장벽, 어른들이 방치하고 있다, 미성숙이라는 낙인, 어른들의 폭력, 무력감에 빠진 청소년, 순응의 나날들, 시민이 아닌 자리, 정치적 부정의와 게으름, 선거권 박탈, 45만명의 참정권 압살,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외침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역설적이게도 어른들의 비겁이 청소년들의 의식을 깨운 것은 아닐까?

각 정당의 원내대표 또는 대표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발언이라기보다 부끄러워서 쓴 반성문 같았다. 그분들도 똑같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부끄러움이 잔뜩 묻어난 발언들을 듣자니 내 마음의 한켠이 밝아지기도 했다.

한 원내대표의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선거 연령이 19살이고, 더구나 세계의 225개 나라의 선거 연령이 18살인데 우리는 거기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 말이 왜 이리 참혹하게 들리는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청소년 세 명의 삭발이 이어졌다. 차마 목도할 수가 없어 눈을 돌리고 있어야 했다. 이 친구들이 우리 어른들을 아주 얼굴도 못 들게 할 작정을 하였구나 하는 원망도 일었다.

정당 대표들이 거의 다 참석을 했는데 유독 ‘자유한국당’만은 빠져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색다른’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머리 굴리기, 주판알 굴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차갑게 ‘자유한국당’에 묻는다!

자유한국당은 청소년들의 뜨거운 목소리를 가슴 열고 직접 들을 수는 없는가? 자유한국당에는 ‘어른’이 그리도 없는가? 어른다운 ‘참어른’이 단 한 분도 없는가? ‘어르신’이 이리도 없단 말인가? 부끄러워하는 ‘어른’이 정말 없단 말인가? 자유한국당은 청소년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가?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4·19혁명에 이어 촛불혁명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시민임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자유한국당이 당명을 바꾼 이후 단 한번도 국민의 마음을 쓰다듬어 준 적이 없다. 청소년들에게만이라도 사람 냄새 나는 결정을 한번쯤은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선거권을 얻지 못하는 45만명 18살 젊은 피가 고귀하지 않는가? 그 새롭고 뜨거운 피로 늙어가는 이 사회에 원기와 생기를 불어넣어주면 안 되겠는가?

구호가 적힌 패널에는 ‘청소년이 투표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는데, 나는 ‘청소년이 투표해야 세상이 바뀐다’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비겁, 어른들의 한계를 우리 스스로가 너무 많이 보아왔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선거 연령은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낮춰야 한다. 18살에서 다시 17살로, 그리고 16살로…. 지금은 ‘100세 시대’가 아닌가? 청소년들은 앞으로 최소한 80년, 90년을 이 사회에서 살아갈 사람들이요, 이 사회를 변화·발전시킬 주체요 주인공들이다. 80년 이상을 살 그들의 미래라면 당연히 그들 자신도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도 점차 고령화되어 역동성을 잃어가고 무기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늙어가고 낡아가는 이 나라를 젊은 피로 수혈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고 보니 청소년들이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무기력해지는 우리 ‘사회’가, 이 낡아가는 우리 ‘나라’가 절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썩어가는 강물이 새 물을 달라고 절규하듯이.

이 나라 젊은이들의 미래를 더 이상 어른들이 함부로 착취하지 말아야 한다. 촛불들이 그토록 외쳤는데, 그토록 알아듣기 쉽게 외쳤는데도 아직도 못 알아듣는 귀는 도대체 뭐냐!

다시 한번 ‘자유한국당’에 묻는다!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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