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8 18:16
수정 : 2018.03.29 10:04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스텔라데이지호 2등 항해사 허재용의 둘째 누나
재용아, 너무 보고 싶다…. 얼마 전 춘천 집에 갔다가 네 장어 도마를 발견했어. 낚시를 즐겼던 넌 특히 가장 어렵다는 장어 낚시를 잘해서 큰 장어 어항도 사놨잖아. 엄마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을 때 네가 장어닭백숙을 만들어 압력밥솥째 들고 입원실로 갔던 얘기는 엄마의 평생 자랑거리야. 구수한 냄새에 위층, 아래층 환자들까지 엄마 병실 앞에 다 모여들었다고! 네가 아끼던 1m짜리 장어 도마에 칼자국이 많길래 사포로 갈아내고 오일을 발라 손질해 두었어. 언제든 네가 돌아오면 다시 쓸 수 있도록….
벌써 1년이 되었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놀라 스텔라데이지호 선사인 ‘폴라리스쉬핑’ 부산사무소로 갔던 그날부터 우리 가족 모두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어. 네가 자부심을 갖고 있던 ‘폴라리스쉬핑’은 너를 찾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사고 난 지 5일 만에 사망보험금을 주겠다며 우리를 회유하려고 했어. 심지어 미군이 구명벌을 찾았을 때에는 선사가 앞장서서 구명벌이 아니라 기름띠로 확인되었다는 거짓말을 유포하고 수색을 종결짓도록 만들었어.
외롭게 선사와 싸우고 정부와 대립해야 했던 지난 1년 동안 우린 너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려고 했어. 배가 침몰할 때 사라진 구명벌 2척과 실종자들을 찾아야 하니까. 디스크 수술 후 맨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엄마가 길바닥에서 노숙농성을 했고 볼펜이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날에도 광화문에서 수색 촉구 10만인 서명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했어. 국회의원 100명을 찾아다니며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심해수색장비 예산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어. 우린 그저 평범하게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떨지 않고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 악성 댓글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더라.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찾아주지 않으니까…. 그래도 이젠 우리 상황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얼마 전에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큰 사건이 있었단다. 지난 2월 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영정사진 앞에서 “엄마! 손주 좀 찾아서 보내줘요!”라며 정말 많이 우셨어. 그런데 발인한 날 오후 ‘남대서양에서 오렌지색 구명벌이 발견’됐다고 해양수산부에서 전화가 온 거야. 그 전화를 받은 네 큰누나가 아무 말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어. 친척들은 무슨 사고가 또 났냐면서 다들 놀라 모여들었지. 엄마는 외할머니 영정사진을 끌어안으며 “엄마가 재용이 찾아서 보내준 거구나”라며 또 우셨어.
그 후 춘천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나. 그러나 결국 발견된 물체는 스텔라데이지호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리 마음은 또 한번 무너지게 되었지. 그래도 14개월이나 남대서양을 떠돌던 그 구명보트가 전혀 망가지지 않고 온전한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희망을 품을 수 있었어. 네가 탈출하기만 했다면, 네가 타고 있는 구명벌도 분명 멀쩡한 상태로 남대서양에서 떠돌고 있을 거야. 6년 전 ‘살바도르’라는 남미 사람은 15개월 동안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살아 돌아오기도 했어.
재용아, 조금만 더 버텨주렴. 누나들이 널 꼭 찾아낼 거야. 우리는 블랙박스도 찾아 거기에 녹음된 네 목소리를 듣고 네가 분명 탈출했다는 것을 확인할 거야. 그리고 네 동료들이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이런 위험한 배에 타지 않도록 ‘대체 왜 사고가 난 것인지’ 꼭 밝혀낼 거야. 정부도 드디어 심해수색장비 투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 모두가 인정했으니 이제 다 같이 블랙박스 회수하는 것에 매진해야지.
어느새 3월31일로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1년이 되는구나. 31일 오후 5시, 광화문 416 광장에서 ‘1년의 기다림,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가 열려. 많은 시민들이 오셔서 우리를 격려하고 정부가 심해 수색에 나서길 호소해 주실 거야.
어서 돌아와, 재용아! 아빠 엄마 두 분 다 올해 칠순이잖아. 같이 식구들끼리 모여 밥 한끼 먹자.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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