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오랜만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을 노아무개, 정아무개 사진가들과 뵈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시던 무렵, 노동자들이나, 빈민·농민들 집회장에서 함께 만나던 친구들이다.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집회장에서 오가다 만날 수 있는 문학인으로는 안타깝지만 몇 없었고, 그중 한 분이 선생님이셨다. 종종 캔맥주 몇개를 사서 집회장 후미로 선생님을 모셔 한 캔씩 먹고 다시 대열 속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등을 쓰신 선생님은 늘 대열 속의 평범한 1인이셨다. “건강이 좋아지면… 따뜻해지면 연락할게.” 선생님 말씀이 벌써 한 삼년 전인 듯하다. 가끔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땐 꼭 전화를 주셔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곡진한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 주셨다. 자꾸 미안하다고 하신다. 자신들의 세대가 이렇게 자기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 세대들에 대해,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간 친구들에게 자꾸 그러신다. 늘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 같았다. 과거와 다르게 ‘용기 있는 이야기’, ‘뼈 있는 이야기’,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귀와 마음속에 잘 남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고, 그래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더 외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도 해주신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야 할 텐데… 살아가는 일 걱정도 많이 해주신다. 너희들끼리라도 잘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신다. 뵐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직 남아 있는 이 계절의 꽃샘추위처럼 쓸쓸하고 아프다. 온몸에 나쁜 병들 여럿이 들어와 있어 자기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해 “용서해줘. 봐줘”라고 하신다. 언제든 기운을 차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자 하신다. 바람에도 넘어지실 듯 여윈 몸이 휘청이신다. 선생님처럼 저렇게 여위고 말라가면서도 정하게 내게 남아 있는 인생의 후기를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무섭다. 옷깃을 여며본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일보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인간다움을 지키며 평범하지만 존엄하게 사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새긴다. 벗 순택이, 30여년이 지나서도 오늘 다시 조세희의 굴뚝에 올라가 있고, 굶고 있고, 거리에 나앉아 있는 ‘난장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대자보로 선생님 말씀을 받아 써왔다. 초봄의 바람이 거세 잘 들고 서 있으라는 것이었는데, 불충하게 나까지 사진에 찍히고 말았다. 선생님은 평생을 한명의 난쟁이가 되어 난쟁이들 곁에서 살아오셨다. 난쟁이들에게 저 부동산업자들을, 브로커들을 죽여,라고 <난쏘공>에 쓰셨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소설. 3월31일에는 다시 작은 ‘희망버스’를 타고 전주시청 앞에서 200일째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김재주를 찾아간다. 늘 마음 아프고 힘겨운 길이지만 다른 삶과 사회를 위한 길에 여러분들이 함께해주면 고맙겠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여위어가는 김득중에게도 가봐야 하고, 목동 스타케미칼 75m 굴뚝 아래에도 가봐야 한다. 거기 가면 평범한 난쟁이 1인이 되어 지금도 서 계시는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나도 이 사회의 평범한 1인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놓아본다. 선생님의 대자보를 담은 노순택의 페이스북 글을 전한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의 두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 멀리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서 버티고 있는 택시노동자 김재주, 단식투쟁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방종운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씨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입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굴뚝과 철탑에 매달려 온몸으로 버티는 저 위의 노동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밥을 거절하며 죽을힘으로 외치는 이 아래의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이 땅 가장 위태로운 곳에서 가장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하지만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모든 난쟁이들 힘내시라. 이분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눈을 돌리지 맙시다. 눈을 감지 맙시다.’”
왜냐면 |
[왜냐면] 난장이들이 쏘아올린 공 / 송경동 |
송경동
시인 오랜만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을 노아무개, 정아무개 사진가들과 뵈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시던 무렵, 노동자들이나, 빈민·농민들 집회장에서 함께 만나던 친구들이다.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집회장에서 오가다 만날 수 있는 문학인으로는 안타깝지만 몇 없었고, 그중 한 분이 선생님이셨다. 종종 캔맥주 몇개를 사서 집회장 후미로 선생님을 모셔 한 캔씩 먹고 다시 대열 속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등을 쓰신 선생님은 늘 대열 속의 평범한 1인이셨다. “건강이 좋아지면… 따뜻해지면 연락할게.” 선생님 말씀이 벌써 한 삼년 전인 듯하다. 가끔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땐 꼭 전화를 주셔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곡진한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 주셨다. 자꾸 미안하다고 하신다. 자신들의 세대가 이렇게 자기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 세대들에 대해,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간 친구들에게 자꾸 그러신다. 늘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 같았다. 과거와 다르게 ‘용기 있는 이야기’, ‘뼈 있는 이야기’,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귀와 마음속에 잘 남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고, 그래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더 외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도 해주신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야 할 텐데… 살아가는 일 걱정도 많이 해주신다. 너희들끼리라도 잘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신다. 뵐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직 남아 있는 이 계절의 꽃샘추위처럼 쓸쓸하고 아프다. 온몸에 나쁜 병들 여럿이 들어와 있어 자기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해 “용서해줘. 봐줘”라고 하신다. 언제든 기운을 차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자 하신다. 바람에도 넘어지실 듯 여윈 몸이 휘청이신다. 선생님처럼 저렇게 여위고 말라가면서도 정하게 내게 남아 있는 인생의 후기를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무섭다. 옷깃을 여며본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일보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인간다움을 지키며 평범하지만 존엄하게 사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새긴다. 벗 순택이, 30여년이 지나서도 오늘 다시 조세희의 굴뚝에 올라가 있고, 굶고 있고, 거리에 나앉아 있는 ‘난장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대자보로 선생님 말씀을 받아 써왔다. 초봄의 바람이 거세 잘 들고 서 있으라는 것이었는데, 불충하게 나까지 사진에 찍히고 말았다. 선생님은 평생을 한명의 난쟁이가 되어 난쟁이들 곁에서 살아오셨다. 난쟁이들에게 저 부동산업자들을, 브로커들을 죽여,라고 <난쏘공>에 쓰셨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소설. 3월31일에는 다시 작은 ‘희망버스’를 타고 전주시청 앞에서 200일째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김재주를 찾아간다. 늘 마음 아프고 힘겨운 길이지만 다른 삶과 사회를 위한 길에 여러분들이 함께해주면 고맙겠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여위어가는 김득중에게도 가봐야 하고, 목동 스타케미칼 75m 굴뚝 아래에도 가봐야 한다. 거기 가면 평범한 난쟁이 1인이 되어 지금도 서 계시는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나도 이 사회의 평범한 1인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놓아본다. 선생님의 대자보를 담은 노순택의 페이스북 글을 전한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의 두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 멀리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서 버티고 있는 택시노동자 김재주, 단식투쟁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방종운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씨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입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굴뚝과 철탑에 매달려 온몸으로 버티는 저 위의 노동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밥을 거절하며 죽을힘으로 외치는 이 아래의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이 땅 가장 위태로운 곳에서 가장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하지만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모든 난쟁이들 힘내시라. 이분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눈을 돌리지 맙시다. 눈을 감지 맙시다.’”
시인 오랜만에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을 노아무개, 정아무개 사진가들과 뵈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시던 무렵, 노동자들이나, 빈민·농민들 집회장에서 함께 만나던 친구들이다.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집회장에서 오가다 만날 수 있는 문학인으로는 안타깝지만 몇 없었고, 그중 한 분이 선생님이셨다. 종종 캔맥주 몇개를 사서 집회장 후미로 선생님을 모셔 한 캔씩 먹고 다시 대열 속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등을 쓰신 선생님은 늘 대열 속의 평범한 1인이셨다. “건강이 좋아지면… 따뜻해지면 연락할게.” 선생님 말씀이 벌써 한 삼년 전인 듯하다. 가끔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땐 꼭 전화를 주셔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곡진한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 주셨다. 자꾸 미안하다고 하신다. 자신들의 세대가 이렇게 자기 역할을 못한 것에 대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 세대들에 대해,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간 친구들에게 자꾸 그러신다. 늘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지 말고 ‘가난하게’ 살라는 말씀 같았다. 과거와 다르게 ‘용기 있는 이야기’, ‘뼈 있는 이야기’, ‘진실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귀와 마음속에 잘 남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고, 그래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더 외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도 해주신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게 살아야 할 텐데… 살아가는 일 걱정도 많이 해주신다. 너희들끼리라도 잘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신다. 뵐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 아직 남아 있는 이 계절의 꽃샘추위처럼 쓸쓸하고 아프다. 온몸에 나쁜 병들 여럿이 들어와 있어 자기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해 “용서해줘. 봐줘”라고 하신다. 언제든 기운을 차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치고자 하신다. 바람에도 넘어지실 듯 여윈 몸이 휘청이신다. 선생님처럼 저렇게 여위고 말라가면서도 정하게 내게 남아 있는 인생의 후기를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무섭다. 옷깃을 여며본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일보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인간다움을 지키며 평범하지만 존엄하게 사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새긴다. 벗 순택이, 30여년이 지나서도 오늘 다시 조세희의 굴뚝에 올라가 있고, 굶고 있고, 거리에 나앉아 있는 ‘난장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대자보로 선생님 말씀을 받아 써왔다. 초봄의 바람이 거세 잘 들고 서 있으라는 것이었는데, 불충하게 나까지 사진에 찍히고 말았다. 선생님은 평생을 한명의 난쟁이가 되어 난쟁이들 곁에서 살아오셨다. 난쟁이들에게 저 부동산업자들을, 브로커들을 죽여,라고 <난쏘공>에 쓰셨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소설. 3월31일에는 다시 작은 ‘희망버스’를 타고 전주시청 앞에서 200일째 고공농성 중인 택시노동자 김재주를 찾아간다. 늘 마음 아프고 힘겨운 길이지만 다른 삶과 사회를 위한 길에 여러분들이 함께해주면 고맙겠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여위어가는 김득중에게도 가봐야 하고, 목동 스타케미칼 75m 굴뚝 아래에도 가봐야 한다. 거기 가면 평범한 난쟁이 1인이 되어 지금도 서 계시는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나도 이 사회의 평범한 1인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놓아본다. 선생님의 대자보를 담은 노순택의 페이스북 글을 전한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의 두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 멀리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서 버티고 있는 택시노동자 김재주, 단식투쟁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득중,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방종운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씨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입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굴뚝과 철탑에 매달려 온몸으로 버티는 저 위의 노동자,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밥을 거절하며 죽을힘으로 외치는 이 아래의 노동자를 생각합니다. 이 땅 가장 위태로운 곳에서 가장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하지만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모든 난쟁이들 힘내시라. 이분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눈을 돌리지 맙시다. 눈을 감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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