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앞부분이다. 존재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은 내가 먼저 어떠한 ‘호칭’을 통해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과 나 사이에는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호칭이나 명칭은 대상의 본질을 규정함으로써 관계의 성격을 정할 뿐 아니라 역으로 대상에 대한 나의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나라 국가행정조직은 중앙행정기관과 그 하부 조직인 특별지방행정기관으로 구성된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특정한 중앙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국가의 지방행정기관”을 말한다. 전국에 5196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구지방환경청,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같이 명칭에 ‘지방’이 포함된 기관은 155개가 있다. 왜 기관 명칭에 지방이란 단어가 들어갈까? 일상적으로 쓰는 이 지방이란 표현은 지역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용어가 아니다. 서울 중심적 관점에서, 중앙 우위 시각에서 지방이라고 규정하고 부른다.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이러한 명칭들은 서울 중심적, 중앙 우위 사고를 공고히 할 뿐 아니라 ‘지방’ 공무원과 ‘지방’ 행정기관을 자발적 역량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는 매우 이상한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방’ 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방위나 지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홍천지방국토관리청은 홍천군수의 지휘를 받는 기관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즉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되, 다만 효율성을 위해 해당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행정기관 명칭을 통해 드러나는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는 우리 공직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같은 직급 공무원이고 각자 고유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데도 마치 당연한 듯이 공무원을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눈다. 왜 굳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눠야 할까? 공무원은 모두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점에서 다 같은 존재 아닌가? 은연중에 형성되어 우리 사회 골격을 이루는 이 권위적 위계구조를 바꿔야 한다. 30년 만의 역사적인 개헌을 앞두고 있는 지금 개헌의 매우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누군가는 아예 헌법에 못 박자 하고, 누군가는 법률로 유보하자 하고, 또 누군가는 시기상조라며 지금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여론도 좋지 않다. 지방의회, 지방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커다란 난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자치와 분권에 대한 의식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가야 할 길이다. 괜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보다는 쉬운 출발점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옛 질서를 함의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명칭들부터 바꿔 보자. ‘부산지방검찰청’을 ‘부산검찰청’으로,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은 ‘여수해양수산청’으로, ‘충청지방우정청’은 ‘충청우정청’으로 말이다. 또 공무원은 국가와 지방이라는 불필요한 구분을 없애고 ‘공무원’으로 통일하자. 그리고 바뀐 이름으로 그 대상들을 불러보자.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의 의식은 완전히 새로워질지도 모른다.
왜냐면 |
[왜냐면] 중앙과 지방, 그 낡은 위계구조를 깨자 / 원혜영 |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앞부분이다. 존재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은 내가 먼저 어떠한 ‘호칭’을 통해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과 나 사이에는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호칭이나 명칭은 대상의 본질을 규정함으로써 관계의 성격을 정할 뿐 아니라 역으로 대상에 대한 나의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나라 국가행정조직은 중앙행정기관과 그 하부 조직인 특별지방행정기관으로 구성된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특정한 중앙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국가의 지방행정기관”을 말한다. 전국에 5196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구지방환경청,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같이 명칭에 ‘지방’이 포함된 기관은 155개가 있다. 왜 기관 명칭에 지방이란 단어가 들어갈까? 일상적으로 쓰는 이 지방이란 표현은 지역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용어가 아니다. 서울 중심적 관점에서, 중앙 우위 시각에서 지방이라고 규정하고 부른다.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이러한 명칭들은 서울 중심적, 중앙 우위 사고를 공고히 할 뿐 아니라 ‘지방’ 공무원과 ‘지방’ 행정기관을 자발적 역량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는 매우 이상한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방’ 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방위나 지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홍천지방국토관리청은 홍천군수의 지휘를 받는 기관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즉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되, 다만 효율성을 위해 해당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행정기관 명칭을 통해 드러나는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는 우리 공직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같은 직급 공무원이고 각자 고유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데도 마치 당연한 듯이 공무원을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눈다. 왜 굳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눠야 할까? 공무원은 모두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점에서 다 같은 존재 아닌가? 은연중에 형성되어 우리 사회 골격을 이루는 이 권위적 위계구조를 바꿔야 한다. 30년 만의 역사적인 개헌을 앞두고 있는 지금 개헌의 매우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누군가는 아예 헌법에 못 박자 하고, 누군가는 법률로 유보하자 하고, 또 누군가는 시기상조라며 지금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여론도 좋지 않다. 지방의회, 지방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커다란 난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자치와 분권에 대한 의식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가야 할 길이다. 괜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보다는 쉬운 출발점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옛 질서를 함의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명칭들부터 바꿔 보자. ‘부산지방검찰청’을 ‘부산검찰청’으로,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은 ‘여수해양수산청’으로, ‘충청지방우정청’은 ‘충청우정청’으로 말이다. 또 공무원은 국가와 지방이라는 불필요한 구분을 없애고 ‘공무원’으로 통일하자. 그리고 바뀐 이름으로 그 대상들을 불러보자.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의 의식은 완전히 새로워질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앞부분이다. 존재가 내게 다가오는 순간은 내가 먼저 어떠한 ‘호칭’을 통해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대상과 나 사이에는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호칭이나 명칭은 대상의 본질을 규정함으로써 관계의 성격을 정할 뿐 아니라 역으로 대상에 대한 나의 의식을 지배한다. 우리나라 국가행정조직은 중앙행정기관과 그 하부 조직인 특별지방행정기관으로 구성된다. 특별지방행정기관은 “특정한 중앙행정기관에 소속되어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에 속하는 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국가의 지방행정기관”을 말한다. 전국에 5196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구지방환경청,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같이 명칭에 ‘지방’이 포함된 기관은 155개가 있다. 왜 기관 명칭에 지방이란 단어가 들어갈까? 일상적으로 쓰는 이 지방이란 표현은 지역에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용어가 아니다. 서울 중심적 관점에서, 중앙 우위 시각에서 지방이라고 규정하고 부른다.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이러한 명칭들은 서울 중심적, 중앙 우위 사고를 공고히 할 뿐 아니라 ‘지방’ 공무원과 ‘지방’ 행정기관을 자발적 역량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는 매우 이상한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방’ 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방위나 지역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홍천지방국토관리청은 홍천군수의 지휘를 받는 기관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즉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되, 다만 효율성을 위해 해당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행정기관 명칭을 통해 드러나는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는 우리 공직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같은 직급 공무원이고 각자 고유의 일을 맡아 하고 있는데도 마치 당연한 듯이 공무원을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눈다. 왜 굳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눠야 할까? 공무원은 모두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점에서 다 같은 존재 아닌가? 은연중에 형성되어 우리 사회 골격을 이루는 이 권위적 위계구조를 바꿔야 한다. 30년 만의 역사적인 개헌을 앞두고 있는 지금 개헌의 매우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 누군가는 아예 헌법에 못 박자 하고, 누군가는 법률로 유보하자 하고, 또 누군가는 시기상조라며 지금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의 여론도 좋지 않다. 지방의회, 지방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커다란 난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자치와 분권에 대한 의식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가야 할 길이다. 괜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보다는 쉬운 출발점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옛 질서를 함의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명칭들부터 바꿔 보자. ‘부산지방검찰청’을 ‘부산검찰청’으로,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은 ‘여수해양수산청’으로, ‘충청지방우정청’은 ‘충청우정청’으로 말이다. 또 공무원은 국가와 지방이라는 불필요한 구분을 없애고 ‘공무원’으로 통일하자. 그리고 바뀐 이름으로 그 대상들을 불러보자.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의 의식은 완전히 새로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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