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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19 17:58 수정 : 2018.03.19 19:08

안드레 리히터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지난 2월 개최된 뮌헨 안보회의에서 당시 독일 외무장관이었던 사민당 출신의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대한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의 제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런 비판이 앙겔라 메르켈 정부의 입장을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잦지는 않지만,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

독일의 유권자들은 해당 지역의 선거구에서 후보자를 선택하는 인물투표와 정당을 선택하는 정당투표 등 두 번의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598석의 반인 299석은 지역 후보로서, 나머지 반인 299석은 정당별 득표 비례로 뽑힌다. 이런 독일의 선거제도로 여러 소수당들의 의회 진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해 9월에 실시된 독일의 총선 결과 6개의 당이 국회에 진출했다.

대체로 3~4개의 정당이 주요 정당으로 진출했던 지난 수십년 동안에 비해 지난 선거는 다당제가 더욱 확대된 것이다. 어느 당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1957년 딱 한 번,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시절, 기민·기사당이 50.2%를 득표하여, 의석수가 과반을 넘은 적이 있긴 했지만,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당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거대정당인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의 지지율이 지난 20년 동안 큰 폭으로 하락하였고, 지난해 9월 선거에서는 양당의 합계 지지율이 간신히 50%를 넘었다.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이 없는 상황을 독일은 ‘연정’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연정이 생각하는 것만큼 용이하게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연정으로 인해 독일 정치에서 일어나는 사태, 곧 메르켈 총리의 외교정책을 같은 내각의 가브리엘 외무장관이 비판하는 것과 같은 사태는 연정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총리가 추진한 정책에 장관이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있다.

그것은 장관에게 자율적 정책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 독일 헌법 제65조 1항(정부 수반인 총리는 ‘국가운영의 원칙 및 방향’을 확정한다)과 2항(세부사항은 장관이 독립적으로 관장한다)의 규정이다. 더욱이 연정 파트너끼리 서명한 연정계약서가 총리의 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다. 연정계약서가 하나의 국정운영 지침서로 사용되어서 총리는 조정권만 있고 실질적인 결정 및 지도 권한이 제한받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총리의 권한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경우 메르켈은 외무장관을 해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외무장관을 해임할 경우 뒤따를 사민당의 반발 등 치명적인 결과를 고려하면서 인내하기로 선택했다. 만약 외무장관을 해임했다면, 45만명에 달하는 사민당 당원이 메르켈의 연정 파트너로 사민당이 참여하는 것을 적극 반대했을지도 모른다. 가브리엘 외무장관은 메르켈의 내각 장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당정치의 경쟁자이기도 하다. 메르켈의 이런 선택으로 총선 후 거의 5개월 동안 표류했던 연정이 드디어 지난 3월 초 구성됨으로써 4선의 메르켈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정치란 때론 호감이 가지 않는 상대방과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추는 어려운 춤이다.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의 연정, 특히 메르켈의 선택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의회 내의 특정 정당과 연정에 준하는 연대를 통해 안정적인 의회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외국인으로서 매우 기대가 된다. 번역: 안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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