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이 76퍼센트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임기 6년의 러시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크림반도 주민들은 푸틴에게 92퍼센트가 넘는 몰표를 던졌다. 서방 언론은 푸틴의 장기 집권을 크게 부각하고 한국 언론도 충실하게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사태를 영미식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피상적인 논평에 머물게 된다. 내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푸틴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소련 붕괴 이후 혼란과 추락을 거듭하던 러시아에서 200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안정성과 영토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강대국 러시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다준 푸틴에 대한 유권자들의 ‘여전히’ 높은 지지도를 보여줬다. 동시에 이번 대선은 러시아에서 사실상 정치적 대안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솝차크, 야블린스키 등 자유주의 성향 후보들은 다 합해야 기껏 3퍼센트를 얻는 데 그쳤다. 횡령 혐의로 출마가 막힌 나발니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자유주의자들은 러시아 토양에 맞지 않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는 공론가들이요, 심지어 서방과 내통하는 비애국적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루디닌, 지리놉스키 등 범민족주의 세력의 득표를 푸틴과 합하면 무려 95퍼센트에 이른다. ‘러시아 국가주의’의 압승이다. 소수 자유주의 세력의 진로는 자신들이 민주화 세력이자 동시에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애국주의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푸틴의 높은 득표율에 기여한 것은 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뿐만이 아니다. 2014년 크림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봉쇄, 그리고 선거 직전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한 영국이야말로 숨은 공신이다. 영국은,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런던에서 발생한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 암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건설적인 제안은 서방 언론에 거의 실리지 않고, 영국과 미국 측의 일방적인 러시아 비방은 마치 사실인 양 크게 보도된다. 이렇게 러시아는 계속 ‘불량국가’로 남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00년 넘게 이어져온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의 전형적 행태이다. 러시아인들은 19세기 나폴레옹 침략, 20세기 히틀러 침략과 미국의 봉쇄, 그리고 소련 체제의 해체와 외국 자본의 러시아 경제 유린을 겪으면서 서구에 대한 깊은 불신과 국가적 통일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서방측의 봉쇄는 과거 스탈린 통치기에 서방측의 증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년 만에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우뚝 섰던 ‘고난과 영광의 날들’을 상기시켰다. 봉쇄경제 아래에서도 러시아는,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 말고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유럽산 농산물의 수입 중단으로 러시아 농업이 부활하는 역설적 현상이 목격되고 있기도 하다. 푸틴의 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원한다면 외부로부터 가하는 국제적 봉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사례이다. 나아가 러시아 대선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16년 세계를 놀라게 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유럽 대륙의 우경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천명, 그리고 시진핑의 중화제국 부활의 꿈과 맥락을 같이한다. 요컨대, 푸틴 현상은 세계적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유라시아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전환기에 다극화를 추구하는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이성, 즉 국가주의의 승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러시아의 형제국인 우크라이나에 친미·반러 정부를 세우고, 냉전 시기 집단안보기구인 나토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해체되기는커녕 러시아 서쪽 국경을 향해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 대외적으로는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국익우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4기의 안정성은 전혀 인기가 없는 메드베데프가 이끄는 정부를 갈아치우고 각급 권력자들의 부패를 척결하면서, 조만간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
[왜냐면] 푸틴은 왜 장기집권에 성공하는가? / 김창진 |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이 76퍼센트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임기 6년의 러시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크림반도 주민들은 푸틴에게 92퍼센트가 넘는 몰표를 던졌다. 서방 언론은 푸틴의 장기 집권을 크게 부각하고 한국 언론도 충실하게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사태를 영미식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피상적인 논평에 머물게 된다. 내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푸틴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소련 붕괴 이후 혼란과 추락을 거듭하던 러시아에서 200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안정성과 영토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강대국 러시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다준 푸틴에 대한 유권자들의 ‘여전히’ 높은 지지도를 보여줬다. 동시에 이번 대선은 러시아에서 사실상 정치적 대안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솝차크, 야블린스키 등 자유주의 성향 후보들은 다 합해야 기껏 3퍼센트를 얻는 데 그쳤다. 횡령 혐의로 출마가 막힌 나발니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자유주의자들은 러시아 토양에 맞지 않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는 공론가들이요, 심지어 서방과 내통하는 비애국적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루디닌, 지리놉스키 등 범민족주의 세력의 득표를 푸틴과 합하면 무려 95퍼센트에 이른다. ‘러시아 국가주의’의 압승이다. 소수 자유주의 세력의 진로는 자신들이 민주화 세력이자 동시에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애국주의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푸틴의 높은 득표율에 기여한 것은 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뿐만이 아니다. 2014년 크림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봉쇄, 그리고 선거 직전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한 영국이야말로 숨은 공신이다. 영국은,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런던에서 발생한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 암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건설적인 제안은 서방 언론에 거의 실리지 않고, 영국과 미국 측의 일방적인 러시아 비방은 마치 사실인 양 크게 보도된다. 이렇게 러시아는 계속 ‘불량국가’로 남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00년 넘게 이어져온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의 전형적 행태이다. 러시아인들은 19세기 나폴레옹 침략, 20세기 히틀러 침략과 미국의 봉쇄, 그리고 소련 체제의 해체와 외국 자본의 러시아 경제 유린을 겪으면서 서구에 대한 깊은 불신과 국가적 통일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서방측의 봉쇄는 과거 스탈린 통치기에 서방측의 증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년 만에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우뚝 섰던 ‘고난과 영광의 날들’을 상기시켰다. 봉쇄경제 아래에서도 러시아는,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 말고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유럽산 농산물의 수입 중단으로 러시아 농업이 부활하는 역설적 현상이 목격되고 있기도 하다. 푸틴의 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원한다면 외부로부터 가하는 국제적 봉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사례이다. 나아가 러시아 대선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16년 세계를 놀라게 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유럽 대륙의 우경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천명, 그리고 시진핑의 중화제국 부활의 꿈과 맥락을 같이한다. 요컨대, 푸틴 현상은 세계적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유라시아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전환기에 다극화를 추구하는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이성, 즉 국가주의의 승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러시아의 형제국인 우크라이나에 친미·반러 정부를 세우고, 냉전 시기 집단안보기구인 나토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해체되기는커녕 러시아 서쪽 국경을 향해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 대외적으로는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국익우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4기의 안정성은 전혀 인기가 없는 메드베데프가 이끄는 정부를 갈아치우고 각급 권력자들의 부패를 척결하면서, 조만간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이 76퍼센트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임기 6년의 러시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크림반도 주민들은 푸틴에게 92퍼센트가 넘는 몰표를 던졌다. 서방 언론은 푸틴의 장기 집권을 크게 부각하고 한국 언론도 충실하게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사태를 영미식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피상적인 논평에 머물게 된다. 내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푸틴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소련 붕괴 이후 혼란과 추락을 거듭하던 러시아에서 2000년대 이후 사회경제적 안정성과 영토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강대국 러시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다준 푸틴에 대한 유권자들의 ‘여전히’ 높은 지지도를 보여줬다. 동시에 이번 대선은 러시아에서 사실상 정치적 대안의 부재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솝차크, 야블린스키 등 자유주의 성향 후보들은 다 합해야 기껏 3퍼센트를 얻는 데 그쳤다. 횡령 혐의로 출마가 막힌 나발니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수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자유주의자들은 러시아 토양에 맞지 않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는 공론가들이요, 심지어 서방과 내통하는 비애국적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루디닌, 지리놉스키 등 범민족주의 세력의 득표를 푸틴과 합하면 무려 95퍼센트에 이른다. ‘러시아 국가주의’의 압승이다. 소수 자유주의 세력의 진로는 자신들이 민주화 세력이자 동시에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애국주의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푸틴의 높은 득표율에 기여한 것은 그의 카리스마적 지도력뿐만이 아니다. 2014년 크림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봉쇄, 그리고 선거 직전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한 영국이야말로 숨은 공신이다. 영국은,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그래 왔던 것처럼, 런던에서 발생한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 암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건설적인 제안은 서방 언론에 거의 실리지 않고, 영국과 미국 측의 일방적인 러시아 비방은 마치 사실인 양 크게 보도된다. 이렇게 러시아는 계속 ‘불량국가’로 남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00년 넘게 이어져온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의 전형적 행태이다. 러시아인들은 19세기 나폴레옹 침략, 20세기 히틀러 침략과 미국의 봉쇄, 그리고 소련 체제의 해체와 외국 자본의 러시아 경제 유린을 겪으면서 서구에 대한 깊은 불신과 국가적 통일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 서방측의 봉쇄는 과거 스탈린 통치기에 서방측의 증오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년 만에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우뚝 섰던 ‘고난과 영광의 날들’을 상기시켰다. 봉쇄경제 아래에서도 러시아는,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 말고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유럽산 농산물의 수입 중단으로 러시아 농업이 부활하는 역설적 현상이 목격되고 있기도 하다. 푸틴의 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원한다면 외부로부터 가하는 국제적 봉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사례이다. 나아가 러시아 대선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2016년 세계를 놀라게 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유럽 대륙의 우경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천명, 그리고 시진핑의 중화제국 부활의 꿈과 맥락을 같이한다. 요컨대, 푸틴 현상은 세계적으로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유라시아 국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전환기에 다극화를 추구하는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이성, 즉 국가주의의 승리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러시아의 형제국인 우크라이나에 친미·반러 정부를 세우고, 냉전 시기 집단안보기구인 나토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해체되기는커녕 러시아 서쪽 국경을 향해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 대외적으로는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국익우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모습은 바로 이런 상황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4기의 안정성은 전혀 인기가 없는 메드베데프가 이끄는 정부를 갈아치우고 각급 권력자들의 부패를 척결하면서, 조만간 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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