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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07 18:26 수정 : 2018.03.07 19:43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박근혜 탄핵으로 촛불항쟁은 끝난 거라 생각했다. 적폐 청산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탄핵 이후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간절함과 절박함 대신에 지치고 피곤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의 말처럼 촛불항쟁은 대통령 하나 끌어내렸을 뿐 기득권과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를 거의 바꾸지 못했다. 그래도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도 바뀌었으니 이 정도 긴장이라도 불러일으켰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MeToo’(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성폭력을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미투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모순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억눌렸던 목소리를 내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은 박근혜 하야와 적폐 청산을 요구했던 촛불을 닮아 있다. 오히려 성차별적 가부장제의 그 오랜 역사를 생각하면 수십 세기를 이어온 적폐의 청산을 미투는 이야기하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1987년 6월 항쟁은 그해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아무 권리도 없이 착취당하던 노동자의 현실, 생산을 둘러싼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이들은 ‘민주화’보다도 어쩌면 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들고나왔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전태일의 항거 이후 끊이지 않았던 노동자의 외침이 있었다.

촛불은 그렇게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적폐 청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불붙고 있다. 역사는 오늘을 기억하겠지. 2017년 촛불항쟁이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이어져 성차별적 가부장제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혁명’의 시간으로 말이다.

하지만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30년이 지난 지금, 30년 전보다 노동자의 현실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정규직, 외주, 하청으로 노동자들의 삶은 30년 전과 거의 다름이 없다. 생산으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자의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론인 김어준은 최근 팟캐스트인 ‘다스뵈이다’에서 “(미투 운동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예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의혹 사건은 또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성추행과 추문 의혹이 불거진 고은 시인은 해외 언론에 글을 보내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 의혹은 단호하게 부인한다”며 “지금 자신은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잠재워지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고 논란이 잠잠해지면 있던 일도 없어지는 사회에서 다시 대지의 축복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의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증언한 애너벨라 시오라 등은 이날 시상식 무대에 함께 올랐다. 이들은 말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해 성별과 인종, 민족에 대한 편견을 걷어차고 깨부수는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새로운 목소리, 다른 목소리, 우리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모여 위대한 합창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마침내 ‘time’s up’(시간이 됐다)임을 알리고 있다.”

울림은 시작됐고 바꿔야 할 시간도 이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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